낙엽 굴러가는 것만 보고도 까르르 웃는다는 18살도, 꽃다운 나이 스무 살도 참 별로였다. 다들 봄 같은 나이라 하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그저 어설프고 초라하다. 봄에 산 흰색 운동화는 항상 오른쪽 엄지발가락 부분이 터졌고 나머지 왼쪽마저 터질 때까지 버티면 다시 봄이 왔다. 그 나이의 여자애들이 다 그렇듯 옷에 관심이 많았는데, 형편이 부족하니 빈티지샵을 뻔질나게 다녔다. 꽤 괜찮은 코트를 2만 원에 건진 날은 기분이 째졌다. 그래서 그런가. 그 시절을 떠올리면 케케묵은 냄새가 난다. 나이보다 더 오래된 것들을 입고 다녀서일까.
복직을 앞두고 꼬깃꼬깃 모아둔 비상금으로 그간 사고 싶던 옷들을 왕창 샀다. 신발도 플랫슈즈, 로퍼 종류별로 사고 셔츠와 스커트, 자켓 등 출근룩에 필요한 것들을 대차게 샀다. 하루는 출근하기 전 현관에서 신발을 고르다 엄지발가락이 터진 흰색 운동화가 떠올랐다. 참 이게 무슨 호사인가. 그때 지금처럼 신발을 고를 수 있었다면, 좀 덜 초라하게 어린 나를 떠올렸을까.
엊그제는 모처럼 친구들과 자유시간을 보냈다. 아기 엄마들이라 잘 먹기 어려운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고, 2차로 이자까야를 갔다. 친구와 메뉴판을 보는데 늘 먹던 청하가 없자 친구가 사케 한 병을 골랐다. 사케는 여자 셋이 먹기에 맛도, 양도 적당했다. 시간이 지나 안주를 더 시킬 때도 어차피 1/N이니 모두가 흔쾌히 주문했다. 어릴 땐 아무리 더치페이라도 얼마가 나올까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바빴는데. 그래서 참 여름이 좋았다. 편의점에서 미리 계산을 하고, 평상이든 공원이든 어디에서든 맥주를 벌컥벌컥 마실 수 있었으니까.
1월만 하더라도 내가 서른일곱이라니? 곧 마흔이라니? 우리 남편이 만으로 해도 마흔이라니? 놀라웠는데, 서른일곱이라는 나이가 세상 살기 딱 좋은 것 같다.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하니 이만하면 젊고, 친구들과 조금 비싼 술도 먹으며 분위기를 낼 수 있고, 다행히 부모님도 아직 건강하시다. 물론 인간관계는 여전히 어렵고 난해하지만, 싫은 사람에게 가식웃음을 지을 만큼의 요령도 생기고, 못 본 척,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흰색 단화만 신던 내가 10만 원짜리 플랫슈즈도 신는다. 그거면 호사다. 명품까지는 필요 없다. 이제 내면의 여유를 위해 독서를 좀 해야겠다. 흠, 책 쇼핑을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