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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Oct 23. 2015

오래된 장소

모든게 낯설어지는 걸음

버스에 내려 숨을 들이 마셨다. 나에게도 향수병 같은 것이 있나 싶어 막상 내린 자리에서 헛웃음을 쳤다. 다행히 길은 그대로였다. 길을 더 들어서니 입구가 요란했다.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설 모양이다. 어린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자전거를 타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초등학교 앞 문구점을 지나 단지 내에 있는 세탁소, 피아노학원, 미용실, 슈퍼가 보였다. 상가 지하에 있던 슈퍼는 문닫은지 오래인 듯 싶다. 다 지워져 가는 '쓰레기나 담배 꽁초 금지' 문구와 함께 쇠사슬 같은 것으로 묶여져 있었다. 간판을 새로이 바꾼 가게도 있고, 새롭게 들어선 곳도 몇 있었다. 101동‥102동‥ 작은 보폭으로 벌써 한 바퀴를 돌며, 아파트 단지가 이렇게 좁았나 생각했다. 나도 모를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더니 하늘을 뚫을 것 같던 아파트의 높이는 이제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걸으면 걸을수록 낯설었고, 나는 집에 가고 싶어졌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버스 대기 시간은 18분 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택시를 탔다. 18분이라니 하물며 13년이 지났는데 그대로 일리가. 입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추억가득했던 곳은 이제 기억 속에 남아야 했다.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이렇게 울컥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옛 상가 가게들이 사라지고, 처음 보는 주인 아주머니가 날 반기고- 모든게 낯선 가운데 자전거를 타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만이 내 추억과 가장 많이 닮아 있었다. 돌아오는 택시 안, 내 마음은 너무나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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