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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Jul 06. 2021

깊이에의 강요

그러나 의미는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에

문학의 건망증, 문학적으로 기억력이 완전히 감퇴하는 고질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 그러다 깨달으려는 모든 노력, 아니 모든 노력 그 자체가 헛되다는 데서 오는 체념의 파고가 휘몰아친다.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도대체 왜 글을 읽는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금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책을 한 번 더 읽는단 말인가? 모든 것이 무로 와해되어 버린다면, 대관절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나는 아름다운 작은 책자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얻어맞은 사람처럼, 실컷 두드려 맞은 사람처럼 슬그머니 서가로 돌아가,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런 책이 있다는 것조차 잊힌 채 꽂혀 있는 수없이 많은 다른 책들 사이에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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