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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l 18. 2018

스물두번째 요가이야기

에카파다 코운딘야아사나




쓸모를 결정하는 사람




손이 하는 일이 정해져 있지 않고, 발이 하는 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손의 역할과 쓸모를 정하는 것은 손을 가진 사람, 손을 사용하는 사람이고, 우리들이 갖고 있는 많은 물건들도 그렇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두꺼운 책은 누군가를 만나 냄비 받침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는 그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중학생 때 국어 선생님이 기억에 남아 때때로 생각한다. 선생님이 쓰시던 커다랗게 네모난 모양으로 각이져있던 안경도 생각나고, 크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호명하시던 모습도 생각난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나무로 만들어진 밥 주걱을 들고 다니셨는데,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들을 혼내실 때면 밥주걱으로 손바닥을 때리셨다. 다른 어떤 매 못지 않게 아파서 다들 모여 주걱이 가진 무서움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요즘과는 다르게 체벌이 어느 정도 당연했던 시절이었고, 누구도 손바닥을 한 두대 맞은 일로는 불만을 이야기하지 못했었는데 어느 여름날, 한 아이가 선생님께 모기 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선생님, 밥 주걱은 밥을 풀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도구인데, 선생님은 왜 그런 주걱을 회초리로 쓰시는 거예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아이를 흘끗 보시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헐렁하게 대답하셨다.

"오이 썰라고 준 칼로 누군가는 누군가를 해치지. 밥 주걱을 밥 푸는데 말고 다른 곳에 사용하는 것은 내 맘이야."

주걱의 쓰임을 결정하는 것은 주걱을 든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척 컸던 선생님의 목소리는 소리만큼 힘도 세서 그 후로도 주걱을 볼 때면, 칼을 볼 때면, 어느새 내 생각 안으로 찾아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입을 열어 소리를 뱉어내지 않아도 내부에서 나는 나에게 그래서 종종 이야기했다. 쓸모를 정해보자. 물건의 쓸모, 나의 쓸모.

그리고 내 몸의 쓰임을 정하는 사람도 내 몸과 가장 가까운 나이다. 손을 뻗어 누군가의 손과 맞잡고 흔들며 마음을 보내는 일과 누군가를 다치게 만드는 일 중에 결국 내가 하는 일이 내 손의 쓸모를 결정한다.

매트 위에서는 낮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거리를 걸을 때에는 멀리에 있는 땅을, 매트에 서는 순간에는 아주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고 가끔 발로 디디고 보던 세상 대신 손으로 땅을 밀며 세상을 보거나 거꾸로 풍경을 보게 된다. 손은 가끔 발이되고, 어느 날에는 팔뚝과 머리가 발이 되어주기도 한다. 에카파다코운딘야아사나를 할 때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앞에 올 다리는 바꾸는 일이 아직 쉽지 않다. 넘어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을 위치에서 버티고 싶어진다. 땅과 가까이 있으니 넘어져보아야 거기에서 거기인데 넘어지는 일은 해도해도 넘어지기 직전까지 넘어지기 싫고 넘어진 다음에는 한숨이 나온다. 오늘 나는 다리를 팔처럼 가볍게 움직여보자 생각한다. 손을 발처럼 견고하게 바닥에 뿌리내려보자 생각한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마음에도 힘을 채운다.

그렇게 내 마음의 쓸모를 내가 정한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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