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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Aug 29. 2018

스물일곱번째 요가이야기

에카하스타부자아사나


다양한 넘어짐 수집가



인생이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던 것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나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던 순간이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거기에서 멈췄다면 정말로 새로운 삶의 모습들이 펼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바람이 뒤에서 등을 밀어주면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앞에서 바람이 세게 반대로 불어온다면 조금 느리게 걸음을 옮기면서 새로운 길 하나를 만들었던 것이다. 방점을 찍는 일보다 다음 방점으로 옮겨가는 동안 보내는 시간. 내내 신중하게 살펴보면서 걸음을 놓는 동안 인생의 새로운 풍경 하나를 자연스럽게 맞이한다.

에카하스타부자아사나를 연습하면서 엉덩이에 본드가 붙은것 같다고 말하며 웃던 내가 있었고, 요즘은 거기에서 연결된 동작들을 부드럽게 연속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발을 슬며시 당겨와서 아스타바크라아사나도 하고 다시 슬그머니 발을 옮겨서 에카파다코운딘야아사나로 갔다가 덜컹거리지 않게 바카사나도 하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고요하게 돌아오고 싶다. 몸이 고요해지면 마음도 고요해지는 거라고 배웠으니 고요하고 싶은데, 나는 여전히 덜컹거린다. 사뿐한 움직임들을 우아, 하며 바라본다.

나는 오늘도 해내지 못했다.
나는 오늘은 어제와는 다르게, 새롭게 잘 해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새로운 실패 하나를 더 수집했다.

나는 매트 위에서 잘 해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 시도한다. 다양하게 실패하고, 다양하게 못난 표정을 짓고, 그런 나와 딩굴면서 삶을 연습한다. 나는 충분히 넘어질 수 있는 사람, 넘어진 다음에 벌떡 일어나서 그 다음 시간을 만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했던 실패 하나가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나는 더 많은, 넘어짐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를 내 전부라고 생각하다니, 그건 참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스쳐오면서 별일 없었던 시간들은 담담하게 지나 보내며 기억의 자리를 넓히지 않으면서 크게 마음이 휘청거렸던 순간은 오래 남겨두고 비슷한 일이 찾아올 때마다 기억을 꺼내며 벌벌 떠는 나를 만난다. 나는 나에게 넘어져도 괜찮다고, 더 많이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못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잘했거나 좋았던 날들은 왜인지 당연하고 잘하지 못했거나 울었던 날들은 당연하지 않다니, 그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매트 위에서도 삶에서처럼 어렵지 않은 동작을 잘 하는 나도 실컷 만나고, 어려운 동작을 아직 잘 못하는 나와도 한껏 만난다. 그것도, 이것도, 무엇도, 내 전부가 아니라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의 총합이니까 만나는 시간 전부를 팔을 커다랗게 벌리고 안는다.

매트 위에서 새롭게 넘어지는 일들은 골목을 기웃거리는 것과 같다. '이 골목으로 들어가야할까?',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야할까?', '지금 모퉁이를 돌면 되는 것일까?' 이렇게 몸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이 길로 계속 가면 될 것 같다고 여겨지면 마음을 선선하게 세우고 함께 걸어간다. 가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아마 대부분은 선생님께서 거기 말고 이쪽으로, 이야기를 하신다면 그 길로도 또 걸어가보는 것이다.

그렇게 만나는 풍경들을 놓치지 않고 전부 만나면서.
점과 점 사이를 분명하게 선으로 채우면서.


+
저의 말이라는 것은, 저의 생각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제가 만났었던 모든 이들의 언어, 제가 읽었거나 들었던 모든 창작자들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훌륭한 언어들을 저답게 다시 엮어내는 일이 제가 노력하고 소망하는 일이고요. 이 글을 쓰는 내내 학창 시절 좋아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실패해요, 쓰러지세요, 당신은 일어설 수가 있으니. 다음에야 쓰러져있던 널 볼 수 있어"가 그 때의 그 목소리로 제 귓가에 들려요. ('수시아'라는 제목의 노래입니다.) 그렇게 만났던 언어들이 저의 내부에 가만히 새겨져 지금의 생각들을 하는 거겠죠. 그들에게도, 모두에게도 고맙습니다. 그래서 영감을 준 문장이 이렇게 명료하게 기억나는 날에는 꼭 밝혀두고 싶습니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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