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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Nov 07. 2018

서른일곱번째 요가이야기

우르드바 프라사리타 에카파다아사나



고작 그 정도의 일들.

따뜻하고 든든한 채소 스프를 한 그릇 먹고싶다. 원하는 것이 분명할 때 정확하게 그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채소 스프가 갑자기 만들어질리는 없으니까 밖으로 나가 장을 보고, 채소들을 사와서 손질해야 한다. 칙피를 미리 불려두고 토마토를 깨끗하게 씻고 브로콜리를 데치고 샐러리에 묻어있는 흙을 잘 제거한다. 칠리도 몇 개 꺼내고 당근을 적절한 크기로 썰어둔다. 준비가 끝나면 커다란 냄비에 재료들을 순서대로 넣고 종종 잘 익어가고 있는지 확인하며 젓는다. 뭉근하게 익어 가는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고작 이 정도이다.

단순하고 깊고 다정한 인생을 살고싶다. 그런 인생을 나에게 줄 수 있는 사람 역시 나 자신이다. 그런 인생이 갑자기 만들어질 리는 없으니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물 충분히 마시기,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롭게 하는 말 하지 않기, 일회 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기, 누군가를 고통스러운 눈물 범벅으로 만든 기업의 제품은 사용하지 않기,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브랜드나 좋은 일을 앞장서서 하는 기업의 제품 사기, 고마울 때에는 늦기 전에 고맙다는 말 전하기, 나와 함께 있어줄 날을 마련해두기, 나의 취향만큼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기, 계절을 만나고 제철인 음식 챙겨먹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만나기.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지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고작 이 정도이다.

한 해에 하나, 두 개씩 추가해온 작은 규칙들이다. 마음이 무너져내리던 날 세운 규칙도 있고, 잔잔하게 행복했던 어느 날 부드러운 마음으로 세운 규칙도 있다. 작은 규칙들로 일상이 채워진다. 너무 사소해서 타인이 본다면 무슨 그런게 규칙이야 이야기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작은 규칙들이 갈 수 있는 곳까지 걷게 하는 빛들이 되어주고 있다. 태연하게 지켜지기 까지는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으로 익숙해지고 나면 어느새 조금은 더 마음에 드는 내가 되어 있다. 하루를 채우는 공기를 따라 무심코 흘러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말들과 행동들이 있다. 흘린지 몰랐는데 그걸 주웠다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날도 있고, 누군가가 본 지 몰랐는데 걷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작다고 여긴 것들이고 흘린지도 몰랐으니 주우러 돌아갈 생각도 못하는데 뒤이어 걸어오던 사람은 그것을 줍는다. 날카롭거나 빛나거나 뭉툭하거나 무겁거나 고요하거나 따뜻한 무언가를. 규칙들은, 나도 모르게 흘리는 것들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혹시나 누군가를 부드럽게 안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우르드바 프라사리타 에카파다아사나를 하면서 고요하게 숨쉬고 견고하게 머무르고 싶다. 아사나 안에서 빛나는 고요를 선물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나 자신이다. 그런 순간이 갑자기 만들어질 리는 없으니까 하나씩 살펴본다. 기반이 되는 발에서 중심으로 올라오는 힘과 하늘로 뻗어나가는 발쪽으로 멀리가는 힘과 내부에서 잡아주는 힘, 시선, 불필요한 긴장을 내보내는 일들을 모두 챙겨야 한다. 그러나 하나를 챙기면 하나를 놓치기 일쑤이고, 하나에 집중하면 또 하나를 잊어버리곤 한다. 하나를 챙기다가 하나를 놓치게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놓쳤다면 다시 챙기면 되니까 너무 낙심하지 않는다. 깊은 숨에 가만히 하나씩 챙겨서 끌어안는다. 차곡차곡 쌓아 견고함을 만드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고작 이 정도이다.

고작 그 정도인 일들이 모여 고요하게 숨쉬면서 요가 아사나를 하게 하고, 단순하고 깊고 다정한 삶을 살 수 있게 하고, 따뜻하고 든든한 채소 스프 한 그릇을 기분 좋게 먹을 수 있게 한다. 그러니까 고작 그 정도일 뿐이었는데 커다란 선물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작은 것들은 작지 않고 우리들은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정성껏 하면 된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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