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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Dec 19. 2018

마흔세번째 요가이야기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는 인생.


어쩌면 그 말에 쓸쓸했던 것도 같다. “네가 하는 일은 힘든게 하나도 없잖아. 늘 즐겁고, 고마운 사람들이 많고, 모두들 너를 좋아해주고, 너역시 모두를 좋아하고.”

설마,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인생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 누구에게나 어두운 터널의 시간이 있다. 시기도 다르고 어둠의 깊이도 다르지만 모두들 각자의 터널을 걸으며 성장한다. 아픈 날의 슬픈 마음이 있고, 무릎에 힘이 풀려 결국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날이 있는 것이다. 그 경중은 잴 수도 없고, 어느 하나만 특별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터널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슬픔이나 좋아하는 사람의 아픔을 들여다 볼 때면 확대경을 들고 보게 되니까 그것이 더 커보일 뿐, 그건 커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더 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위로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은 어느 하나가 유독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모두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는 일은 내가 가진 능력 중 하나이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오늘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따뜻한 말을 꺼내어 두툼한 솜잠바처럼 몸에 감싸고 걷는다. 내내 생각한다. 나를 찾아온 고마운 표정에 대해서. 그런 습관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고 마음이 어려웠던 시절에 나에게 선물한 습관이다. 그 즈음에는 마음같지 않은 일들을 붙잡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왜 나여야 하냐면서 많은 눈물을 삼키고 뱉었었다. 그러다가 내가 만난 고통은 견줄 수도 없을 만큼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을 알게 되었다. 상상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많은 이들이 무력해지고 말았던 그 봄부터 오래 생각했다. 여전히 생각한다. 아마도 그 후부터 아직 숨이 있다면, 일어날 수 있으니 그렇게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나가자고 되뇐다. 내 슬픔과 고통은 그 출발이 나라는 이유로 나에게 아주 커다랗게 보이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지나쳐 가게되니까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한 시절을 지나보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씩씩하게 걸어나와 상상할 수 없는 슬픔 속에 있는 이들을 끝없이 위로하고 싶다. 슬픔은 정면으로 만나야만 한다. 그러나 슬퍼하기만 하는 슬픔으로는 우리는 자신도 타인도 구원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나는 노력하고 있다. 같은 풍경 안에서 더 많은 좋은 일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서운했던 한 마디 보다 고마웠던 눈빛 하나를 오래 기억하려고 한다.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마음보다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마음을 길어 올리고 싶다. 정직하게 응시하는 것과 뾰족하게 바라보는 것은 다를테니까 부드럽게 본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었던 날에 시작된 습관 덕분에 잘 살고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쓰고 말한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글을 쓸 때면 그래서 별수없이 그런 것들이 소재가 되는 것이다.

요가 동작들은 쉽지가 않다. 몸이 느린 나는 처음에 아주 많이 넘어졌고, 유연하지도 견고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성장했다는 것을 안다. 처음부터 이미 둘 중 하나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몹시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지나온 마음의 터널들은 정말이지 그래서 지나올 수 있었으므로 사실은 아주 부럽지만도 않다. 좋은 날이 늘 힘든 날 후에 오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에는 좋은 날과 안좋은 날과 덜 힘든 날과 더 힘든 날이 비빔밥처럼 뒤섞여 있어서 그 맛이 좋다. 그 중에서 무엇을 더 많이 생각하고 어루만질지를 정하는 것은 바로 자신. 어쩌면 우리가 매트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매트를 말면서 떠올리는 ‘그 동작은 정말 힘들었어.’의 바로 그 동작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동작들은 할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들은 가장 어려웠던 그 동작을 더 오래 생각할 때가 있다.

수련 후 매트를 말 듯 한해를 천천히 정돈하여 동그랗게 모으면서 스스로에게 이로울만한 시간들을 더 넓은 자리에 놓아둔다. 빈 자리가 많아도 괜찮다. 그럼 더 잘 보일 테니까. 슬픔이나 기쁨의 지위를 격상하거나 격하하지 않고 어느 것은 더 빛이 드는 자리에, 어느 것은 더 온도가 높은 곳에 둔다. 모든 감정들이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적절한 곳에 좋은 간격으로 펼쳐둔다. 기분이 좋을 만한 마음을 더 자주 꺼내어 더욱 오래 바라보는 일. 나는 그런 일들이 좋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일 덕분에 내가 여기,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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