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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Dec 12. 2018

마흔두번째 요가이야기



놓는 일 만큼은 나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귀한 선물.

얍! 하는 기합과 함께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고요한 시간을 계절처럼 지나보내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는 일. 새로운 물건들을 계속해서 사들이며 공간을 채우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일은 오래 사용한 물건들에 시간을 입히며 소중하게 여기는 일과 정말 필요하지 않은 것을 골라내어 공간을 가볍게 하는 일. 언제나 힘을 빼는 일과 계속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볍고 선선하게 계속해서 가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멋있고 존경스럽다.

노래의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힘을 가득 채운 노래보다 역시 듣기 좋은 소리는 밀물과 썰물이 다녀가는 것처럼 힘을 주기도 하고 힘을 빼기도 하는 누군가의 노래가 아닐까? 꽤 긴 변주곡 같은 우리의 삶도 비슷하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한다. 다짐을 하고, 좋은 경험을 내부에 들이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일은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추억도 결심도 계속 채우는 일만을 반복해서는 어느 순간 아주 무거운 가방을 맨 것처럼 어깨가 무거워진다.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은 당신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못했던 것은 어린 날의 나. 시작은 함께여도 끝은 각각 맞이한다는 일이 견디기 어려웠던 그 봄을 잊지 못한다. 그가 떠난 후에도 오랜 시간동안 마음을 붙잡고는 생각했다. ‘놓지 않고 있으면 분명 만나게 될 거야.’ 영화나 소설 속에서처럼 결국에는 만나게 될 거라고 믿었지만 우리들은 결국 만나지 못했고, 놓지 않고 일년을 그리고 이년을 이후 더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은 나일 뿐이었다. 그렇다. 붙잡으면서 걷는 일은 과거의 시간을 모두 등에 지고 걸음을 놓는 일과 같아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조차도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친구들은 이제 마음을 멈추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누구도 대신 놓아줄 수 없었다. 붙잡는 일은 혹여 고마운 사람이 도와줄 수 있지만 놓는 일 만큼은 내가 나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관계나 일, 혹은 마음을 붙드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준다. 으쌰으쌰 구호를 외쳐주기도 하고 누군가 건넨 응원의 말에 마음에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서 힘을 실어 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불필요한 힘을 빼는 일은 아무도 대신 해줄 수가 없다. 갖고 있는 것 중 불필요한 것을 골라내어 내려두고 가볍게 걷도록 도와주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요가 동작을 설명하다보면 더 안전하게 힘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할 수가 있지만 힘을 빼는 방법에 대해서는 섬세해지려해도 도무지 너무 부족하다. 어디에 힘을 빼야하는지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어떻게 빼는지는 각자의 방법이 있을 뿐이라서 “그 곳에 힘을 어떻게 빼면 좋을지 잘 결정하세요.” 라는 말만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고 숨을 쉬는 일이다. 힘을 내어 만들어지는 동작들도 있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힘을 놓고 나니 그제서야 선뜻 나를 찾아오는 동작들도 있는데 그것은 둘 모두를 경험해보아야만 진심으로 그렇다는 것을 믿게 된다.

그를 놓아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게 되었다. 그를 놓고 나면 어떤 시절 하나가 지나가버릴 것만 같다는 두려움에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이제 놓았구나, 알게 되었고 실제로 한 시절이 지나가 있었다. 기다렸을 뿐인데 놓아졌다. 그러니 아주 고마운 것 중 제일 앞에는 늘 시간이 있다. 지금 어떤 방법을 써도 놓을 수 없는 어떤 사람이나 힘, 어떤 마음은 시간을 만나 함께 흘러가다보면 어느새 놓게될지도 모른다. 필요한 힘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고, 서둘러 놓고 싶은 마음 탓일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이 이유일 수도 있다. 중요한 하나는 내내 함께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것, 놓는 일 만큼은 나만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아주 큰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다.

가방이 가벼우면 조금 더 명랑하게, 먼 길도 노래 부르며 걸을 수 있다. 가끔 무거워졌다가 한바탕 내려놓고 가벼워지면서, 긴 변주곡을 듣기 좋게 만들어간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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