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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Dec 26. 2018

마흔네번째 요가이야기



작은 손으로.



나는 손이 무척 작다. 어렸을 때 엄마는 키도 더이상 크지 않고 손도 발도 더이상 커지지 않는, 어느 순간부터 몸집만 커지는 나에게 하늘 높은 줄은 모르고 세상 넓은줄만 아는 아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셨었는데 그런 말이 삶이라는 그릇의 바닥을 채우고 있어서인지 여전히 높아지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고 넓어지는 일과 멀리 가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이 두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크지도, 많지도 않다는 것을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무엇도 영원히 끌어안을 수 없다. 찾아온 것들을 전부 안고 걷는 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더딜까 생각을 해보면, 가볍게 한 발자국씩 놓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행운처럼 느껴진다.

처음 경험했었던 상실의 좌절감을 기억한다. 열두살이었고, 친구의 가족들이 놀이공원에 가던 날 왜인지 어린 나는 그들의 소풍에 따라나섰었다. 친구말고는 모두가 낯설어서 아주 뻣뻣한 표정으로 친구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주변을 살펴보니 태어나 처음 갖게되었던 사랑하는 카메라가 없었다. 목이 막혀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카메라가 없다고 이야기하니까 어른들도 친구도 모두 놀라고, 다함께 커다란 놀이공원에서 카메라를 찾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다. 한참을 찾았지만 카메라는 어디에도 없어서 친구의 아버지가 어쩔 수 없겠다고 이야기하시다 말고 막 웃으셨다. 왜냐하면 카메라는 내 왼손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러나 땀에 축축하게 젖어서 붙잡혀있었기 때문에. 그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 거린다. 그 날 입었던 검정색 민소매 티와 짧은 청반바지와 캡이 뒤로 가도록 썼던 빨간 모자도 여전히 선명할 정도이다. 고마운 친구의 가족들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미 모두들 소풍의 흥은 가셨으므로 해가 지지 않은 오후에 예상보다 이르게 동네로 돌아왔다.

아주 꽉 붙잡고 있어서 붙잡은 줄도 모를 수도 있다. 놓치지 않겠다고 애를 쓰는 동안 습관처럼 되어버린 어떤 것은 이상하게도 아주 반대로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어린 날에는 쥐고 있던 카메라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손도 확인하지 못한 채 눈물을 꿀꺽꿀꺽 삼키며 놀이공원을 헤매고 다녔었지만, 이제는 무언가를 잃으면 생각한다. 다 끌어안고 가기에는 무거워서 내게서 멀리간 것이라고. 소중함을 잊었느냐는 질문인지도 모른다고. 두 손에 아직 남아있는 것을 잘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라고.

몸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최상의 상태 역시 매일 변화한다. 십년전의 최선과 지금의 최선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아주 다르다. 더 나아진 것도 분명히 있지만 태어날 때 한 번 선물 받고는 죽는 날까지 그대로 보살피며 살아가야하는 몸에 대해서라면 오락가락하다가 어느 날 부터는 약해질 것이 분명하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익숙한 매트에 발을 디디고는 많이 속상했다. 잘하는 것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거나 갖고 있던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인지,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어쩌면 잃을 만큼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고작 일년, 많은 추억을 얻었지만 매트 위에서 어렵게 겨우 해냈던 것들을 많이 잃어버린 후였다. “예전에는 나도 할 수 있었는데,”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없이 자꾸만 매트에 섰다.

300일의 여행과 돌아와 보낸 일년, 아직 젊고 건강한 몸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간을 쌓는 동안 떠나갔던 동작들이 다시 와주었고, 잊혀진 지도 몰랐던 요가를 시작했던 때의 마음도 되살아났다. 또 익숙해지고 무뎌지고 조금은 당연해질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안다. 언젠가는 나를 떠나갈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서 그리움만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니 그렇게 될 테니까 지금 뜨겁게 만난다. 지금의 몸을, 지금의 마음을. 그러니까 더 소중하게 여긴다. 지금 할 수 있는 움직임을, 지금 낼 수 있는 용기와 지금 전할 수 있는 고마움을.

작은 손으로 꽤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을 수 있다. 많은 것을 붙잡을 수는 없어도 스쳐가는 동안 온기를 전하기엔 충분한 손이다. 인사를 건네고, 친구들을 안아주고,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기에 더없이 충분한 손이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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