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 Jan 02. 2019

마흔다섯번째 요가이야기


세상의 많은 ‘원래’ 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똑같이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어디에 가요?” 라고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고, 다음 날이 되면 학생들은 나에게 “선생님, 어디에 가요?” 라고 질문을 했다. 즐거운 일이었고, 그만큼 때로 무거워지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학생에게 너의 한국어가 왜 그렇느냐 물으면 학생들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한국어는 원래 그런 것인데 왜 저런 질문을 하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 않았을까? 아이를 나아본 적은 없다. 그러나 한국어를 가르치는 동안 어쩌면 언젠가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이렇게 놀랍도록 따라서 하고, 어떤 말을 할 때면 매번 짓는 표정을 이렇게 똑같이 얼마간 짓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짓는 표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만나는 마음과 사소한 말들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 분명하게 어딘가에서 출발했을 텐데 익숙해진 많은 것들은 그 출처를 알 수가 없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만 같다. 세상의 많은 ‘원래’들은 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와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것은 그가 습관처럼 “나는 원래 그래.”라는 말을 해서였다. 그는 시험기간에도 늦은 밤에 퇴근하는 나를 위해 다음 날 이른 아침 출근을 해야해도 데리러 와서 집에만 무심히 데려다주고 가는 사람, 성실하게 사랑하는 잘 웃는 사람이었지만 어떤 말의 말미에 자주 등장하는 원래 그렇다는 말은 내 마음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몰랐던 세상으로 함께 가보자고 손을 이끌 수 없을 것 같아서, 0보다도 아래로 내려가보자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시무룩해졌었다.

그랬던 내가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매트 위에서 원래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약한 곳과 원래 어려운 것. 물론 태어날 때 부터 약한 몸의 구석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현재의 약한 곳은 어쩌면 오래 들여다보지 못했던 곳일 뿐인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다시 오래 바라보다보면 문득 어느 날 무척 강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약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세심하게 돌보았던 신체의 어느 구석은 나중에는 가장 튼튼한 곳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반대로 가장 자신하던 곳이 아픈 날도 있다. 그러면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소홀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잘 살피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원래부터 강하다는 생각이나 원래부터 약하다는 생각은 그래서 꽤 위험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만들게 한다. 한계를 만들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할 것이다. 천천히 나아가야만 하는 어떤 섬세함과 선을 긋고 선밖에 서서 내내 갈지말지 고민하는 것은 둘다 느려보이지만 매우 다르다.

시작하는 지점에서 만났던 풍경은 우리에게 어떤 바탕을 만들어 준다. 그 바탕이 고마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바탕이 커다란 벽이 되어 우리들을 우물 안에 가두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 원래부터 그랬던 것 같은 것은 어떤 것도 우리의 발목을 붙들지 않도록 지금을 그냥 지금으로 만나면 어떨까. 어떤 이름표도 달고 있지 않은 몸을 낯설게 만나고 내가 나를 알고 있다는 오해도 없이 겸손하게 지금과 매번 새롭게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은 타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기도 하니까.

나는 나를 모른다. 여전히 모른다. 그래서 기대되는 나의 한 해를 천천히 걸어 들어가본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작가의 이전글 1월 배경화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