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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Feb 13. 2019

쉰한번째 요가이야기


삼거리 횡단보도의 빨간불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만나는 횡단보도가 있다. 가끔 초록불이 켜지는 때에 횡단보도 앞에 서면 운좋게도 추운 날 멈추지 않고 걸음을 이어가게 되지만 대부분은 왜인지 빨간불에 서게 된다. 그렇거나 그렇지 않거나 일텐데 기억을 돌이켜보면 열 중에 일곱쯤은 빨간불에 그 앞에 선다. 그러면 별 수 없이 기다린다. 기다리고 있으면 오래 지나지 않아 초록불이 켜질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리 크게 좌절하지 않고 의연하게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볼 수 있다.

요가 동작을 하면서 3분, 5분, 멈춰있는 날에는 매번 같은 때에 숨을 참거나 숨을 고르면서 시간을 확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서 수련을 하며 문득 알게되고는 무언가 마음 속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는 기분이었다.

요시노히로시 라는 분이 쓰신 [동사 ‘부딪히다’]라는 시를 읽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분께서 부딪치면서, 부딪치는 사람이나 사물을 세상이 내미는 거친 호의로 여기며 출퇴근을 한다는 말에 감명받아 쓰셨다는 시. 작가는 눈이 보이기 때문에 사람이나 물체를 피해야하는 장애물로 여겼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문득,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상상했다. 막대기로 톡톡톡 두들기며 걷는 동안 무언가에 부딪칠 때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며 안도하게 될까, 걷다가 벽을 만나면 그래 이쯤에 벽이 있으니까 이제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려야하지, 하는 생각을 하게될까, 짐작할 수 없는 마음을 가만히 짐작해본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없지만 열렬히 상상해보는 동안 그렇다면 매번 이 즈음에서 벽에 부딪힌다는 것을 아는 일과 매번 이 즈음에서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려야한다는 것을 아는 일과 매번 그 때에 그런 마음이 올라오니까 잠시 기다리거나 마음을 돌려세워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어떤 마음 하나와 힘겨루기를 시작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런 날에는 십중팔구 지고 만다. 이기자! 생각하면 이기고야 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기자! 외치는 순간 구호에 힘이 빠져서 결국에는 더이상 힘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마음이어도 사람이어도 다른 무엇이라도 이기려는 마음 같은 것은 별로 갖지 않고 살아왔다. 경쟁의 사회에서 참 생존하기 어려운 생명체이지만 이기지 않고도 살아내는 방법을 고심하며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런 마음을 이겨내고 나는 이것을 하겠다.’ 같은 문장은 나에게서 아주 멀리 있다.

이겨내지 않아도 된다. 그런 마음이 올라오는 것은 내가 지금 어딘가를 지나치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 집까지 십분이 채 남지 않았으니 만날 수 있는 삼거리의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불이 켜져 버렸다고 속상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도 잘 살아내고 건강하게 돌아왔으니 만날 수 있는 횡단보도 앞에서 그런 마음은 영 말이 안되는 것처럼, 몸의 움직임을 감각할 수 있고 잘 살아있으니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 앞에서 움직임의 어려움에 대한 한탄은 안해도 괜찮은 것 중 하나이다. 물론 그렇지만, 그렇기에 느끼게 될 것이다. ‘아! 지금 힘들어!’, ‘이제 빠져나오고 싶어!’ 같은 것들이. 그러면 요즘 나는 가만히 ‘아 지금 2분쯤 지났나보군.’ 속으로 이야기한다. 지나가는 길 곳곳에 있는 벽이나 모퉁이를 확인하면서 현재의 위치를 가늠하는 사람처럼.

기다리고 있으면 머지 않아 그 동작에서 빠져나오게 될 테고, 아주 불편하다고 여겼던 것도, 굉장히 좋다고 느꼈던 것도 모두 그리 길지 않은 시간 후에 사라질 것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리 크게 좌절하지 않고 의연하게, 그렇게 삼거리에서 자동차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본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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