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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Feb 06. 2019

오십번째 요가이야기





물처럼 흐르는 달리기와 요가에 대해서.

되짚어보면 분명 즐거웠던 기억들이 있다. 벚꽃이 질 무렵 여의도를 달렸던 마라톤도 좋았고, 평소에는 차로 다니던 한강 대교들을 건강한 몸으로 바람을 실컷 마주하면서 달렸던 날도 좋았다. 손을 뻗어서 만지작 거리면 깊은 곳에서부터 온기가 올라오는 유단포처럼 안에서부터 퍼져나오는 좋은 순간들. 멈추지만 않는다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정직함도 좋았고, 고요해져야 더 귀기울여 듣게되었던 숨 소리를 바깥의 자동차 소리와 건강한 타인들이 뛰면서 내는 소리들과 구호들 사이에서 더욱 귀기울여 듣게 되는 일도 즐거웠다. 밖이 소란스러워지면 함께 소란스러워질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내부를 향하는 느낌이 좋았던 것이리라.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기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부터였다. 매번 10km를 뛰었지만 평소에는 별다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지 않고 그날의 건강상태에 의존하며 달렸던 나는 대부분 55분에서 한시간 사이에 도착지점에 다다랐다. 달리기가 요즘 즐겁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기록을 묻곤 했는데 나로 말하자면 처음에는 뛰었지만 내가 몇 분만에 도착한지도 기억 못 할 만큼 그 부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한 시간 정도를 계속해서 움직이면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고 좋았다. 알고 있다. 누군가는 ‘기록은 기록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달릴 테고, 성장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참고하여 현재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런 현명한 이들이 많은데 당시의 나는 그렇지 못하였을 뿐이다. 기록에 대한 질문을 듣고, 대답하고 나면, 사람들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필요한 연습같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가?’, ‘왜 빨라져야하는가?’하는 질문이 내부에서 다시 올라왔다. 그러니까 달리기에 대해서 나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의미 자리에는 다른 것이 놓여 있어서, 모른 척 하면 그만 이었을 그런 이유로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고 어느새 달리지 않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빨라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빨라지는 방법들을 연습할 수밖에 없는 심지가 매우 약한 사람이었다. 보편의 가치는 보편인 줄 알았고, 보편이라고 부르는 다수의 가치 밖에 있는 다른 가치들은 내 울타리 안에서는 보이지가 않아서 좁은 시야에서 볼 수 있는 만큼 만을 보았기 때문에 생겨난 오류들이 있었다.

요가가 좋았던 것은 부족해보이는 나를 부족하게 보는 것은 나 자신 뿐 이었기 때문이다. 요가 아사나를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은 물론 아주 멋있지만 요가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건강한 마음을 잘 담아서 시간을 건너가기 위해 견고하고 부드러운 몸을 만든다. 마음만 살펴서도 몸만 살펴서도 결국에는 그것이 부족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 사실이 참 아름다웠다. 동작이 서툴러도 동작 안에서 깊은 숨을 쉬며 스스로를 긍정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 충분한 요가를 하게 된다. 화려한 동작을 해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가 다시 궁금해졌다. 내가 만들고는 저향하던 선 밖으로 걸어나오고 나니 멋진 사람들을 자꾸 만나게 되는데 최근에 인연이 닿은 달리기 선생님이 있다. 빨리 달리지 않아도,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달리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래서 달리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니 달리기도 요가와 닮아 보인다. 기량이 늘어나면 빨리 달리게 되기도 하겠지만, 멋진 풍경들을 더 느긋한 마음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부상없이 더 즐겁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연습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가처럼.

그것이 요가일 때에도, 달리기일 때에도, 그것을 만나는 순간의 행복에 중요한 가치를 둔다. 도착지점에 마음을 먼저 보내고 뒤쫓는 대신 과정 내내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언젠가 멋지게 어려운 아사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지만 걷는 길 내내 나의 시선이 매 순간 살아있는 나를 느끼는 일에 있다면 좋겠다. 그러니까 행복은 ‘쉽다’도, ‘빠르다’도 아니고, ‘높다’도 아닌 나의 발 아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의미가 있는 곳에서만 의미를 찾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계를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면 한계를 넘어설 필요도 없고 무리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물처럼 흘러갈 수 있다. 물처럼 흐르는 요가이기를, 물처럼 흐르는 새로운 달리기이기를.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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