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하는 소비생활 : <사고재비>
05. 볼펜
수첩과 볼펜을 늘 가지고 다닌다. 급할 때는 핸드폰 메모 어플을 켜지만 글씨로 풀어쓰다 보면 나의 생각들이 더 생동감 있게 느껴져서인지 스케줄 노트도 아이디어 노트도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편이다. 그런 연유로 종이와 펜을 사용하다 보니 고르는 일에도 까다로울 수밖에.
한번 마음에 든 펜과 종이가 생기면 주구장창 그것만 쓰다 보니 벌써 몇 년째 육각형 모양의 뚜껑을 가진 0.25mm 얇은 필기감의 펜을 사용하고 있다. 한 번은 이 펜을 다 쓰게 됐는데, 무X양품에 갈 일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며 집에 있는 다른 펜으로 며칠 생활을 해봤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이 펜으로 인해 얼마나 유익한 필기(?) 생활을 해왔는지 새삼 깨닫고는 날을 잡고 매장에 방문해서 망설이지 않고 다섯 자루를 구입해서 쟁여놓고 뿌듯해하던 기억이 난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난 명필가가 되긴 글렀나 보다. 번지지 않는 종이도 중요하지만 볼펜 똥이 생기지 않고 적당히 얇은 굵기에 매끄러운 필기감을 자랑하는 이 펜을 알게 된 후부터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일기를 더 많이 쓰기도 했다. 이와 같이 나와 합이 맞는 펜을 가지고 있으면 흘러가는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샘솟다 보니 필기감 좋은 펜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애틋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내 곁에 머무는 사람에게 가지는 감정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만 무장해제되어 버리는 마음과 합이 맞는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어지는 바램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