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까만 양장 10년 다이어리

by 버들




나의 생각하는 소비생활 : <사고재비>

20. 까만 양장 10년 다이어리


두꺼운 벽돌 같은 생김새의 다이어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재작년 연말이었다.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가 알게 된 작은 서점에서 제작해 판매 중인 제품이었다. 두 페이지에 걸쳐 10년 치의 오늘이 펼쳐져 있는 다이어리였다. 기발하다는 생각과 함께 채워져 가는 매년의 하루하루를 돌아보는 것을 상상하니 뒷 목이 간지러웠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 바로 구입을 하려고 찾아보니 그 서점에서는 품절이 된 상태였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보니 다른 제품이 몇 가지 나오긴 하는데 영 내키지 않았다. 1년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음 한편에 담아둔 채 잊고 지냈다. 어김없이 연말이 돌아왔고 서점의 인스타그램에서 다이어리 판매 피드를 발견하자마자 주문을 넣었다. 그렇게 까만 양장 다이어리가 나에게 왔다.

하루를 남기는데 주어지는 양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칸이지만 10년을 한 권에 적어 넣기 위해서는 두꺼울 수밖에 없다. 까만 벽돌 같은 녀석을 침대 옆에 늘 펴두는 베드 트레이 위에 펜과 함께 올려두었다. 그로 인해 올해 새로 생긴 나의 습관은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3-4줄 정도로 정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루 중 중요한 기억을 더듬어 찾아 적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적기를 보름 정도 지나고 나니 페이지를 넘길 때 윗 줄이 어느 정도 까매지는 것이 보였다.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요즘은, 훗날의 나는 오늘의 뭐가 궁금할까를 생각하며 하루를 한 칸에 남기고 있다.

두 번째 칸을 채워나갈 때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열 번째 칸을 채울 때 내 마음의 꼴은 어떤 모양일까. 당장 내일조차 모르겠음에도 이 다이어리를 쓰다 보면 자꾸만 그런 것들이 떠오른다. 문득 내가 이 다이어리를 읽으며 눈물짓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곳에서보다 헐벗은 민낯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마냥 맑은 하루만 읽히지는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훗날 그 어떤 책 보다 나를 울게 할지도 모른다.

그전까지는 자기 전 명상을 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고요하게 호흡하고 있으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다양한 생각들이 나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요즘은 가부좌를 꼼꼼하게 틀고 정적에 머물면 예전보다 고요함이 일찍 다가옴을 느낀다. 명상 전 기록하는 이 몇 줄의 영향이 큰지, 수기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안으로 파고드는 내성 발톱 같은 성정이 자주 나를 고되게 한다. 덮어두고 모른 채 하면 켜켜이 쌓인 그늘이 대중없이 뭉쳐 나를 한 입에 삼킬까 두렵다. 재미난 일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잠시 잠깐 즐거울 수 있지만, 끊임없이 알아차려 정화하고, 그것을 쓰고 그려서 뱉어내야 여여한 마음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즐길 수만은 없는 시간들이다. 이제는 그것을 모르는 때로 돌아가 마냥 천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결국에는 내가 가진 다양한 성질 중 그 내성 발톱 같은 기질이 나를 안으로든 밖으로든 쉼 없이 나아가게 하니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그림자 같은 녀석과 잔잔히 사이좋게 지내며 기록하고 들여다보기에는 두툼한 10년 다이어리가 안성맞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19. 시력 보호 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