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하는 소비생활 : <사고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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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시력 보호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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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때의 시력은 2.0/1.2로 좌우 시력이 많이 달랐다. 당시 전국의 초딩들이 안경을 끼는 게 유행이었던지라 엄마를 조르고 졸라 분홍색 철테의 시력 보호 안경을 끼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눈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안경을 원망하기엔 온 가족 모두 시력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집의 식수는 눈에 좋다는 결명자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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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는 안경을 끼고 다니는 게 너무 싫어서 수업시간 외에는 빼놓고 다녔다. 그랬더니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일상이 되고 못 알아보고 지나쳤다는 이유로 학교 선배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렌즈를 끼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고 렌즈 착용 10년을 꽉 채우고 나는 라식 수술을 했다. 라섹 수술과 달리 몇 시간의 통증 후에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되는 라식 수술은 홀로 타지 생활을 하는 내겐 안성맞춤이었다. 살면서 내 각막이 열리는 것을 내 눈으로 보는 경험을 할 일이 또 있을까. (남은 각막 두께를 확인하는 걸로 봐서는 재수술 가능성이 없진 않다.) 강남에서 수술을 하고 당시 살던 동네였던 수유로 가는 택시 안에서 마취가 풀리는 바람에 앞이 안 보여서 혼났다. 대낮이었는데 택시기사님이 시름시름 앓는 나를 배려해 하필 지름길로 인도하셨다. 직선으로 쭉쭉 뻗어야 할 길을 꼬부랑하게 달려서 대낮의 인신매매에 대한 내 두려움이 택시 천장을 찍고 하마터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뻔했다. 집 앞에 무사히 내리고도 앞이 안 보여서 3층인 집까지 기어올라 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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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7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일을 하면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그림을 그리고 그게 아니면 핸드폰을 내내 하고 그게 아니면 책을 읽는다. 매일 한다고는 해도 요가와 산책은 그에 비하면 비중이 낮다 보니 눈의 피로감이 극심해져서 편두통까지 오게 되었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이경규의 매직아이를 흉내 내다가 덜컥 재수술이 무서워져 안경점으로 달려갔다. 시력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도 약간의 난시 외에 7년 전 수술 후 얻은 시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경점에서 제일 가벼운 안경테를 추천받아 렌즈를 넣었다. 테는 정말 저렴했는데 렌즈를 꽤 비싼 걸 골랐다. 노화로 인한 거면 어쩔 수 없지만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다시 나빠진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덜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분홍색 케이스에 안경을 담아주시길래 하늘색 케이스로 바꿔 담아서 가지고 나왔다. 34살의 나는 분홍색보다 푸른색을 선호한다. 그렇게 이번에는 국민학교(그렇다) 시절과는 다르게 멋이 아니라 진짜 겁이 나서 다시 보호 안경을 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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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끼는 것과 끼지 않는 것의 시력 차이는 없지만 안경을 끼고 있으면 나를 보호해준다는 안정감이 든다. 24년 전에는 컬러풀한 철테 안경을 끼는 유행을 따랐지만 요즘의 나는 안경이라는 한 겹 뒤에 숨어사는 기분이다. 맨 얼굴에 이마를 훤히 드러내놔도 안경 하나면 내 얼굴에 복면이 씌워지기라도 하는 듯이 당당해진다. 이쯤 되니 이 안경이 보호해주는 것이 비단 시력만은 아닌 듯 싶다. 프레임이 콧볼까지 내려오는 안경이 있다면 자외선 차단 렌즈를 넣어 끼고 다니고 싶다. 그러면 선크림조차 안 발라도 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