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크림색 이북 리더기

by 버들



나의 생각하는 소비생활 : <사고재비>

18. 크림색 이북 리더기


가죽 다이어리, 아이패드, 화장품 파우치, 사탕이나 초콜릿 그리고 책 한 권.

늘 가지고 외출하는 목록에 책 한 권이 빠지지 않는다. 가지고 나가서 한 장 겨우 넘기는 날도 있지만 들고나가야 마음이 편하다. 나는 고소한 책 냄새를 사랑한다. 그리고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바스락거리는 감촉을 좋아하는 종이책 예찬론자이다. 보통날에도 버스를 타고 나가서 책이 가득 있는 서점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나를 감싸는 특유의 따뜻한 기운에 위로받곤 했다. 가족과 친구, 연인에게서 받는 것과는 또 다른 결의 포근함.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이북 리더기의 실물과 마주했다.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 무게가 꽤 가벼웠고 양 옆 버튼을 누르니 손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이북 리더기하면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할 거라 예상하며 눈의 피로를 염려했다. 한데 마치 잉크로 한 자 한 자 찍은듯한 출력방식이 일반 전자기기와는 달라 눈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돌덩이를 들고 다니는 듯한 외출가방의 무게로 어깨 통증이 극심하던 차에 제대로 솔깃했다.

자고로 선물이라는 것은 내 돈 주고 사기에는 애매하고, 눈에는 주기적으로 밟히는 것을 받았을 때 가장 기쁘다고 하지 않던가. 마침 서점에서 봤던 그 이북 리더기를 선물 받게 되어 나의 물건이 되었다.

받자마자 읽었던 첫 책은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에 소개된 ‘다크호스’였다. 팟캐스트를 듣다가 당장 읽고 싶은 마음이 일었는데 간편하게 결제 후 바로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전자책의 매력이었다. 문학의 흡입력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주제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워서 오른쪽 버튼을 제법 빠르게 눌러가며 금세 한 권을 읽었다.

지하철 안에 서서 한 손에는 손잡이, 한 손에는 이북 리더기를 들고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 손이 작은 나에게는 가장 반갑다. 카페에서는 테이블 위에 세워서 볼 수 있는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어서 두 손이 자유롭다.

요즘은 종이책을 두 권 읽으면 이북 리더기로 전자책 한 권 읽는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같다. 이북 리더기를 가지고 집을 나서면 줄어든 가방 무게가 바로 느껴지니 가벼운 발걸음에 마음마저 편안하다. 그 흐름 따라 자연스레 무게를 줄일만한 소지품을 찾아 뺄 건 빼버렸다. 요즘 가방이 예전에 비해 한결 더 가벼워지고 나니 뭐 때문에 그렇게 짊어지고 다녔나 싶기도 하고.

나는 어떤 것에 대해 확정하고 매듭짓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야 마음에 안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데 살아보니 세상에는 단정 지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정말 싫었던 가지무침이 이제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기도 하고, 1일 1아이스크림을 고집하던 내가 이젠 너무 달다는 이유로 배스킨라빈스 앞을 지나도 별 감흥이 없다.

전자책은 종이책을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만 여겨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물건을 사용해보니 책은 책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장단점이 확실히 있다. 뭐가 좋고 나쁜 것 없이 상황 따라 다르게 쓰면 그만인 것이다. 이북 리더기가 생긴 후로는 무조건 싫은 것이 세상에 있을까 자주 생각해본다. 물론 여전히 종이 책도 사랑한다.

흐르는 시간을 타고 나의 취향의 모양과 마음의 생김새가 달라져간다. 마음을 너무 막아두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열어둬야지, 하고 생각한다. 내 취향이 아닌 사물이나 마주하기 버거운 사람이 생기면 시간이 흘렀을 때는 또 어떤 모양으로 내 마음 한편에 있을지 상상해본다. 내 입에 찰떡같이 맛있는 음식을 매일 찾아 먹으면서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의식해본다. 그러고 나면 무조건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맞이해야지.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내일의 나는 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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