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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May 09. 2018

열두번째 요가이야기

시르사아사나



 거기가 맞아도 가끔 사는 일은 어려워요.


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이 아직도 너무 많은 삼십대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즐겁고,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대부분의 처음 해보는 많은 일들은 나를 신나게 만들어서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최근에 했던 처음 하는 일은 나를 조금 겁먹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내 속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더 잘 속곤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엉덩이가 아주 가벼운 아이였다.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도서관 자리에 여전히 앉아, 되든 안되든 머리를 싸매고 있을 줄 알고 친구는 간식을 사서 날 찾아왔는데, 나는 이미 나가서 영화관에 앉아 있기도 하고, 도서관 내 자리에서 탈출해서는 아래층 서가에 가서 지금 이 순간 필요한 책과는 거리가 먼 소설책을 읽고 있곤 했다. 어렵다고 느껴질 때, 이해할 일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보다 더 크다고 느껴질 때, 내 속에서는 매번

'여기가 아닌 것 같아, 내 자리는.'

이라는 이야기가 올라오곤 했다. 해야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크고 높은 일 같을 때, 내가 해낼 수 있는 넓이보다 더 넓게 마음 써야하는 일 같이 느껴질 때면 요즘도 여지없이 그런 말들이 나를 찾아온다. 나를 작아지게 하는 말은 이상하게 힘이 아주 세다. 그 말과 힘 겨루기를 하다보면 나는 점점 무력해진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럴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아서 내가 모르는 것의 목록을 만들어가며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기도 하고, 무엇도 정리하지 못한 채 길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처럼 마음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처음 시르사아사나를 만나서 도전하던 때가 생각났다. 넘어질 것 같을 때마다 내려왔고, 흔들릴 때마다 무언가를 바꿔야 할 것 같았으며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지면에 닿은 몸의 위치를 옮겨야할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힘들 때마다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그런데 돌아보면 모두 거기가 맞았고, 성장이 일어나는 순간마다 나는 흔들렸다. 매트 위에서 만났던 마음들이 삶에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거기가 맞아도 힘든 시간이 있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

잘 해내고 싶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 날에는 노트를 펴고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쓴다. 할 수 없는 일 부분은 잠시 접어두고 할 수 있는 일을 해본다. 그 순간 나의 내부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다. 그 시간을 기다린 만큼, 도망가지 않고 성실하게 보낸 딱 그 만큼 성장이 일어난다.

엉덩이가 가벼운 아이였던 나는 이제 엉덩이가 무거운 어른이 되어 하루와 또 하루를 채워나간다. 여기가 맞아도 때로 어렵고, 여기가 맞아서 때로 즐거운 인생의 시간을 모두 맛볼 수 있어서 정말 고맙다고 생각하면서.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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