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오기 전에 찾았던 제주 바다.
어스름이 내려앉으면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지 못할까 봐 서둘러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가로등도 어스름이 세상을 덮기 전에 불을 밝힙니다.
제각각 세상을 비추는 가로등은 바다가 아니라 사람을 비춥니다.
바다를 보다가 가로등과 하늘로 눈길이 저절로 갑니다.
바다를 보러 왔다가 가로등의 불빛이 퍼지는 결에 따라 지나온 시간을 반추합니다.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에 실린 추억과 밀려가는 파도에 얹힌 이별을 떠올립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카페지기와 매니저랑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옥상정원이 있는 카페이다 보니 이것저것 치울 게 많네요.
“그만 내일 문 열지 말까?”
“비바람이 몰아칠 텐데 사람들이 다닐까?”
다들 하루쯤 문 닫는 쪽으로 기울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내일 두 시쯤 갈게요.”
“내일 태풍이 온다는데…”
태풍 때문에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손님은 그때쯤이면 물러간다는 예보를 봤다며 오겠답니다.
괜찮은 카페가 집 옆에 있는 걸 이제야 알았다며 꼭 오겠다고 하네요.
한동안 카페가 조용했습니다.
글을 쓰기엔 좋을지 몰라도,
아니 사실은 너무나 적막하면 글 쓸 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더 신경이 쓰여서요.
이렇게 버티는 게 언제까지일까, 하고 쓴웃음을 짓는 나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생면부지인 사람이 좋은 카페일 것 같다고 하니 쓴웃음은 달콤한 미소로 바뀝니다.
버틸 만 하니 버텨온 듯합니다.
그때 제주 바닷가의 가로등은 지금쯤 버티고 있을까요?
손님이 없어 울상이었던 카페,
글쓰기가 풀리지 않아 눈만 깜빡이던 나.
버틸까, 버틸 수 있을까.
하루에도 여러 번 웅얼거리는 푸념.
그러다가 전화 한 통,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책 속의 한 문장이 누르는 글쓰기의 스위치.
이런 소소한 것들이 몸을 움직이게 하고 마음의 기지개를 펴게 합니다.
버틸까, 버틸 수 있을까, 하고 되뇌는 것보다 그저 하던 대로 마음의 고요를 유지해 봅니다.
부산하게 움직이다가 자리에 앉아 쉬니 졸음이 쏟아지는군요.
이렇게 고요를 유지하면 안 되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