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까지 가서 꽃을 보고 왔냐?”
어제 제주를 다녀왔습니다.
카페지기는 꽃 사진을 보여주니 대뜸 제주까지 가서 꽃을 보고 왔느냐고 합니다.
그 말이 핀잔이라기보다 그곳에서도 꽃을 보았느냐는,
슬픔 어린 미소를 보고 왔느냐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찾은 제주는 그때처럼 또 여행이 아니라 일 때문에 찾았습니다.
하루의 여정을 건조한 마음으로 보냈었죠.
바다 건너 다다른 곳인데 기껏해야 400미터 내외를 왔다 갔다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겨우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밥을 먹으려 간 곳은 그나마 바닷가였습니다.
밥을 먹으러 간 곳은 용두암 근처였습니다.
밥 먹기 전에 용두암에서 해 질 녘 바다 풍경을 보자고 길을 나섰습니다.
수수한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바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들꽃이었습니다.
분홍의 아프리칸 데이지는 여기서도 거기서도 볼 수 있는 들꽃입니다.
그런데 흔하지만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바다 바람을,
바다의 소금기를 머금은 물기를,
바다를 비추는 햇살을 데이지는 온몸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분홍의 들꽃은 어디서든 그렇듯이 길 한 편에 조그맣게 존재를 드러냅니다.
틈날 때마다 이런저런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었지만,
가장 먼저 글을 쓰고 싶고 생각에 잠기게 했던 것은 슬픔 어린 미소로 다가온 들꽃이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아마도 좀 전에 떠올린 제주의 시간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근과 학살과 죽음과 외면과 유배의 시공간이었던 제주.
그러나 김만덕의 생애처럼 아픔에 공명하며 나눔을 펼쳤던 희망의 씨앗도 공존했던 제주.
슬픔이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미소는 분명 있었습니다.
슬픔 어린 미소를 마음에 담고 돌아오는 길,
제주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 듭니다.
되돌아온 뭍에서 짠내 나는 바다와 역사를 떠올립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땅과 물과 하늘을 보며 느껴보는 역사의 시간입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하루를 보낸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