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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Feb 13. 2024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게 부끄러운 거죠

음악이 글에 묻힐 때가 많습니다.

온전히 음악에 파묻혀 본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니 은근히 민망합니다.

글을 읽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글에 빠지려고 음악을 듣곤, 아니 곁에 두었습니다.

여투어둔 음악은 많은데,

여투어둔 음악의 시간은 없었나 봅니다.


원고 작업에 섭슬려 군데군데 놓아둔 음악과 관계.

여백이 없는 마음이니 담아둘 데가 모자라 먼지에 쌓여 바스러지는 게 아닐지.

골목길 안 카페의 벽에 걸어둔 마른 꽃과 풀처럼 생기를 잃어가는 듯합니다.

기어이 문자가 아니라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이름을 꾹꾹 누릅니다.

어딘가에 있을 그들은 반가이 맞아줍니다.

마른 꽃이 되살아나듯 관계의 먼지도 조금은 털어낼 수 있습니다.


이제 음악을 찬찬히 살핍니다.

가만히 앉아 글과 음악을 떼어 놓습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글렌 굴드의 연주를 듣습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입니다.

책에서 언뜻 본 음악을 이제야 듣습니다.

음악을 보기만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고요.

1981년 녹음본이 좋다고 해서 여러 번 듣다가 산책에 나서려 했습니다.

아, 무료한 산책길에 배경음악이 될 것 같아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이번만큼은 음악에 파묻히려고요.


무엇이 됐든 그 실체에 다가설 줄 알아야 합니다.

용기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여유도 있어야겠지만.

실체에 다가서지 못하고 아는 척하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야겠죠.

볼수록,

들을수록,

알수록 점점 더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깨닫는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게 부끄러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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