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핀 후에 목련 나무를 매일 지켜봤습니다.
언제 꽃봉오리가 필지.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자,
어느새 벚꽃이 거리를 채웁니다.
샛노란 개나리까지 피어 울긋불긋한 봄이 인사를 건넵니다.
목련과 벚꽃에 눈이 팔려 꿋꿋이 피어 있는 동백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 혼자 구석진 곳에서 필 듯 말 듯 애태우던 동백을.
동백은 저 혼자 꽃을 피워 존재를 알립니다.
묘하게 색바랜 붉은 빛 동백에 눈길이 자꾸 갑니다.
목련 꽃잎이 벌써 땅에 떨어져 타들어 가는데.
저마다 자기 존재를 드러냅니다.
때가 되어 드러나는 존재는 그 자체로 인정하면 됩니다.
저 혼자 드러내는 것을 내세우며 곁을 억누르지 않으면.
자기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면,
그 신념은 강압이자 독선,
혹은 광기로 치닫습니다.
가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확신과 신념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고민은 그것이 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런저런 가치를 갖다 붙인 아집인지 구분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차이,
종이 한 장만큼이나 얇은 차이인데도 와닿는 정도의 커다란 간극.
그 차이가 불러오는 것은 커다란 절망일 때도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가치와 언어의 난무에 고개를 흔듭니다.
그보다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작은 접점을 찾고자 합니다.
수줍은 동백과 한껏 뽐내는 목련 사이에서 동백에 시선을 더 돌리려는 이유죠
제각각 봄이라는 이유로 서로 어울리려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구석에서 홀로 핀 동백이 외면받지 않았으면 해서요.
여기에 목련이 있고
저기에 매화가 있고
이곳에 벚꽃이 있고
저곳에 동백이 있는.
어울림의 봄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