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건조한 글자만으로는 느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과 그림과 음악을 보고 듣습니다.
글자에 갇힌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감상은 이렇듯 나만의 이야기를 더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몇 년 전 떠난 여행에서 먹먹한 가슴으로 찾은 곳이 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누군가 매일 시들지 않는 꽃을 가져다 놓은 곳.
추모의 장소는 과거를, 비극을, 누군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문득 추모의 장소에 왜 꽃을 가져다 놓는지 궁금했습니다.
생전의 아름다움과 생명을 기리는 의미일까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던 그곳에서 덩그러니 놓인 꽃은 과거를 붙잡고 있습니다.
한참이 지나 다시 꺼내본 사진첩에서 본 그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여행의 그때만을 떠올리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 꽃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머릿속에는 이야기 하나가 또 펼쳐집니다.
전쟁과 희생,
이별과 통곡,
추모와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바느질합니다.
이야기의 실을 꿰어 어느 순간의 인간들을 떠올립니다.
가을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갑작스레 가을비가 내리네요.
덕분에 글보다 소리를, 장면을, 기억을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