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시간 사이의 간격을 채우다

by 글담



낮게 깔린 구름과 라디오 진행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어울리는 해 질 녘입니다.

점점이 불을 밝히는 자동차 뒷꽁무니의 줄이 차츰 더 길어지는 시간입니다.

작은 등불 하나 켜 놓고 원고와 씨름하다가 바라본 바깥은 무심할 따름이네요.

잠시 머리를 식히려 어둑한 하늘을 보니 뜬금없이 몇 년 전 봤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나무로 만든 꽃 한송이.

안타깝고 애절한 이별을 기리기 위한 영원한 인사로 남겨둔 나무꽃.

수십 년이 지나도 그 긴 시간의 간격을 채우는 그리움과 추모.

나무꽃은 시들지 않고 단지 색이 조금 바랜 채 긴 시간의 간격을 채우고 있습니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간격을 채우려 뭔가를 만들고 남겨두나 봅니다.

그게 조각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잊지 않으려 하는 바람이 시간과 시간 사이의 빈곳을 채웁니다.

오늘따라 나는 어느 시점의 시간과 시간 사이를 무엇으로 채워볼까요.

아등바등 하루를 보낸 후 한숨을 토해내는 이 시간에 말이죠.

지루한 글을 써볼까,

유치한 그림을 그릴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산봉우리를 감싼 구름을 바라볼까.

요즘 따라 왠지 몇 년 전 떠났던 여행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그때와 지금까지의 간격을 채우는 것은 아마도 추억이겠죠.

답답해서일까요.

무척이나 그때의 시간이 생각나고, 또 그 이후로 지금까지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간격을 채우는 또 하나의 방법은 복기와 반성이겠죠.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그러나 굳이 오늘 그렇게 채우고 싶지는 않네요.

하루를 그리 살았는데,

이 짧은 시간마저도 또 치열하게 계산하고 싶지는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