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둔치에 산책할 시간 갖고와.”
멋드러진 가을 오후의 강변 사진을 보낸 선배는 시간을 가져오랍니다.
함께 산책하자는 말보다 시간을 가져오라는 말에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시간을 그저 함께 보내자는 뜻일 텐데,
시간을 가져오라니 강변의 사진만큼이나 시적인 표현에 슬며시 웃습니다.
시간을 가져가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요.
몸이 움직이고 함께할 그곳으로 가면 어느새 시간은 함께 할 텐데요.
제 딴에는 바쁘다는 티를 많이 내고 살았나 봅니다.
굳이 시간을 가져오라고 하는 걸 보니.
시간을 가져오라는 말에 쟁여둔 지난 시간도 꺼냅니다.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떠난 여행.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불쑥 찾아간 한 교회가 떠오릅니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라는 이유만으로 둘러보는데,
낯선 이방인을 기꺼이 반기며 안으로 들어와 쉬라고 하네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문밖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넋을 잃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여행이 번잡한 마음을 한순간에 정리해주지 못하죠.
그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여행의 문턱 앞에서 서성거립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한순간의 마음 울림 때문이라서요.
이걸 구태여 깨달음이라고 포장하지는 않으렵니다.
마음이 울리는 것을 느낄 때 그저 삶의 순간을 떠올릴 뿐입니다.
살아있구나.
살아가고 있구나.
살아가야겠구나.
여행 내내 내리던 비에 시달렸던 터라 문밖의 햇살은 가져다준 것은 생의 기운이었습니다.
조만간 찾아갈 낙동강 둔치에서는 강물과 하늘과 구름과 꽃이 어떤 울림을 줄까요.
아, 그보다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했는데 자꾸만 그것부터 기대가 되네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