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벽 짧은 나들이는 옷 하나 더 껴입어야 합니다.
서늘한 공기는 몸을 살짝 떨게 하고,
어두운 사위는 눈을 가늘게 뜨게 합니다.
며칠째 이 새벽 나들이가 피곤합니다.
하루를 새로이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거든요,
그보다 어제를 마감하지 못했다는 피로가 덮쳐 옵니다.
불면증인가 봅니다.
잠을 자지 못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파묻혀 있다가 떠올리는 얼굴들.
그들은 이 밤에 무엇을 할까,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다들 같은 곳을 보며 살았다고 착각했습니다.
늘 함께 있었으니 그렇게 여겼겠지요.
그러나 옆에 있으면서도 다른 곳을 보고 살아온 지난 세월입니다.
갈수록 말은 줄어들고,
갈수록 눈은 딴곳을 향합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각자가 다른 곳을 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해서 관계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본다는 것과 함께 있다는 것의 차이가 뭔지 궁금해집니다.
불편한 삶의 동거인지,
갈라진 삶의 공존인지.
“스무살로 돌아가면 뭐라고 이야기해줄래요?”
옆에서 갑자기 물어온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못했습니다.
아마 그 질문은 그때의 아쉬움을 떠올리라는 것이겠죠.
하지만 곧바로 떠오르는 게 없는 걸 보니 운 좋게 살았나 봅니다.
다만, 뜬금없이 그때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이들은 다들 여기저기를 바라보는데,
함께 한곳을 바라보며 산다고 여겼답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힘들지 않았다고,
외로워도 외롭지 않았다고 기억하며 살았던 게 아닐까요.
착각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여전히 전화를 아무때나 걸 수 있고,
여전히 회포를 아무때나 풀 수 있으니 그걸로 된 거죠.
그래서 갈라졌다고 해도 공존이라 여기렵니다.
요즘 세상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