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걸 다 가려
여러 시간과 경험을 통해 자신에 대해서 새롭게 알아가는 부분이 있는데 나의 경우 그중의 하나가 낯가림이다. 낯가림이란 단어와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면에 깊숙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당시 대만에는 가족 친지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대만에서의 첫날,
게스트하우스 한국인 매니저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나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줬다. 한국인 워홀러 언니 한 명과 대만 친구 한 명, 매니저까지 총 3명이 내가 대만에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전부였다.
새로운 공간과 환경과도 낯을 가리는데 그들과 쉽게 친해질 리 없었다 ㅎㅎ
그런데 묘하게도 어떤 부분에서는 마음이 편했던 부분이 있었다. 누굴 만나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특정한 생각, 편견 혹은 고정관념이 없고 나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차분히 나를 바라보고 바깥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여러 색들 사이에서 검정색 점은 잘 안 보이지만 하얀색 바탕에는 점 하나라 할지라도 뚜렷이 잘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모든 게 낯선 이곳에서 조금은 익숙함을 찾을 필요성을 느꼈고 목적지 없이 걸어보자고 생각했다.
아! 걷기 전에 뭐라도 먹고 싶어서 용기를 내서(용기가 필요했다 ㅎㅎ) 집에서 100m 거리에 있는 아침밥 집에 들어갔다. 그래도 중국어학과를 졸업했는데 긴장을 한 탓일까?(그렇게 믿고 싶었다)
알아보는 글자가 없었다.
심하게 당황을 해서 메뉴판만 뚫어지게 쳐다봤고 아침 먹는 시간이 한참 지났기에 가게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아침밥집 주인아저씨는 나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셨다. 그렇게 한동안 대치상황을 유지하고 있다가 겨우 꺼낸 나의 중국어는...
請給我第一個
"첫 번째 걸로 주세요"
다짜고짜 첫 번째 걸로 달라고 하는데 주인아저씨는 찰떡같이 내 엉터리 중국어를 알아들어주셨다. 나는 도대체가 이 메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고 문뜩 든 생각이 어차피 모르는데 순서대로 먹어보자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내일은 두 번째 메뉴를 시켜보자고 다짐했고 매일 하나씩 먹어보는 재미가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주문한 메뉴가 바로 이것!
아이스홍차와 오리지널딴빙이다.
그렇다면 이 딴빙(蛋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대만 아침밥의 대표메뉴로 얇은 밀가루 반죽으로 여러 재료를 싸서 주는데 대만분들에게 사랑받는 메뉴인만큼 맛없기가 쉽지 않다.
안에 치즈를 두르면 치즈딴삥,
돼지고기를 넣고 돌돌 말면 돼지고기딴삥,
해쉬브라운을 넣으면 해쉬브라운딴빙!
별 거 없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침에 눈이 떠지는 날이면 무조건 이 아침밥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내가 주문한 것이 메뉴판에서 제일 첫 메뉴이다 보니 오리지널딴빙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로지 계란과 파를 넣어 돌돌 말아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담백하니 내 입맛에 꼭 맞았고 딴빙은 대만에서의 나의 최애메뉴가 되었다.
한국은 아침밥집이라는 개념이 잘 없는 것 같다. 다 집에서 엄마 밥을 먹기 때문일까?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은 김밥천국이나 파리바게뜨 정도? 실제로 한국에서 유학하는 대만친구들이 아침을 먹을 곳이 없다고 푸념한 적이 있다. 대만에서는 아침 6시 반에도 아침밥 집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선택의 폭도 넓어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저 위에 메뉴판을 보면 알겠지만 대만 아침밥 메뉴를 다 소개하기에는 흠.. 너무 힘들어서 포기
아침 먹는 게 지루하지 않게 각종 신문과 잡지들이 놓여 있는데 대만은 매체들 종류가 많아서 상업적 경쟁이 과열되어 있달까? 지금은 많은 제재를 한다고 하지만 내가 대만에 있을 때만 해도 각종 연예인 스캔들과 자극적이고 사소한 내용들이 많이 보도가 되었다.
仔仔雪恥 勇奪影帝 주유민 설욕, 남우주연상을 쟁취하다
: 자세한 스토리는 모르지만 주유민이 남우주연상을 놓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신인한테 놓쳤기 때문에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스토리가 있었던 와중에 남우주연상을 타서 이렇게 기사가 나온 것 같다.
배불리 먹고 근처 공원에 산책을 왔다. 햇빛이 아주 따사로워서 걸을 맛이 난다. 여유롭게 광합성을 하고 있으니 긍정적인 에너지가 그냥 생기는 것 같다. 타이페이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점이 어느 곳을 가든 이런 공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공공의 공간들이 아주 많다. 돈을 들이지 않아도 이런 공원에서 유유자적하며 이웃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연인과 대화할 수 있고 홀로 산책을 할 수 있다.
긍정에너지도 얻었겠다. 용기를 내서 조금 멀리 나가보려고 한다. 저녁에 사범대 근처에서 모임이 생겨서 이왕이면 미리 도착해서 주변을 돌아다녀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지하철로 가는 길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인다.
지하철 가는 길 풍경 ① 방송사
우리 집 근처에 방송사들이 많았는데 한국드라마를 방영해줬나 보다. (문근영&이상윤 주연의 불의 여신 정이)
대만은 한국과도 가깝고 문화 전파가 빠르게 되기 때문에 많은 연예인들이 대만에 와서 팬미팅, 악수회, 콘서트를 열었다. 덕분에 대만에서 살고 있는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통역으로 용돈을 벌었다. 이 때도 한류열풍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BTS, 오징어게임 등등 K-열풍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감회가 새롭다.
지하철 가는 길 풍경 ② 편의점
지금은 패밀리마트를 모르는 어린이청년(?)들이 많겠지만 대만에서 편의점계의 양대산맥은 패밀리마트와 세븐일레븐이다. 대만의 편의점은 한국 편의점과 조금 느낌이 다른데 대만의 편의점을 경험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알바생이 일하기 정말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뭐 거의 헬...
대만에서는 편의점이 굉장히 특별한 공간이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만물상? 만병통치약? 같은 느낌이다. 없는 게 없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일단 우리나라와 같이 음료, 과자, 빵 등 기본적인 것들을 판매한다.
- 핫도그, 고구마, 계란, 어묵 등 간식거리를 많이 판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우리나라 편의점도 팔지만 여기서는 정말 진짜를 판다ㅋㅋㅋ 어묵이 펄펄 끓고 있고 핫도그빵에 각종 재료가 구비되어 있어서 직접 제조하여 먹는다.
- 그래서 대부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 ATM, 화장실이 있는 곳도 많다.
- 교통카드 충전이 가능하다.
- 전기세 등 각종 세금을 낼 수 있다.
- 택배를 부칠 수 있다.
- 콘서트 등 각종 문화공연 예매도 한다.
- 커피메이커? 같은 걸로 커피도 만들어 준다. 종류는 다양하지 않고 카페라떼, 아메리카노 등 기본 메뉴 정도
- 가장 편리한 점! 스캔, 복사, 인쇄를 할 수 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으니 편의점은 대만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소이고 가장 당연하고 익숙하고 편한 곳이다. 편의점 문화를 빼놓고 대만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지하철 가는 길 풍경 ③ : 제사의식
중국어로는 拜拜라고 하는 제사의식이 있다.
회사든 일반음식점이든 상관없이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대만사람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광경이다.
대만에서는 기본적으로 도교를 믿고 있다. 불교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토속신앙처럼 도교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용산사라는 사찰에 가더라도 도교와 불교과 서로 섞여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살짝 과장해서 전쟁 나는 소리가 나면 '아~ 오늘 빠이빠이(拜拜)하는 날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폭죽을 어마어마하게 터뜨리기 때문에 아주 멀리에서도 다 들린다. 음력으로 월초나 보름에 진행하는 데 번영과 무탈함을 비는 행사로 우리처럼 음식을 만들어서 하지는 않고 과일이나 과자 등 간단하게 꾸며서 진행한다.
걷고 걸어서 드디어 지하철에 도착!
음,, 엄밀히 말하면 대만 지하철은 지하철이 아니다. 정확한 명칭은 첩운,중국어로도 구분을 해서 말한다.
처음 첩운捷運을 탄 느낌은 모노레일 같은 느낌이 이었는데 그 이유가 내가 탄 노선(문호선, 文湖線)이 기관사 없이 운영되는 일반 다른 노선과도 조금 다른 형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는 문호선文湖線을 좋아했는데 밖에서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생각날 만큼 감성 있는 모습이다.
이 첩운捷運은 어떤 모습일지 또 한국 지하철과 어떻게 다를지 기대를 하며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