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읽는 , 그 매력적인 순간.
유년기때, 적지 않은 내 나날들을 함께했던 가장 흔하고 의미있는 아이템이
'손목시계'라 여기게 된 것이, 언제부터었을까.
새삼스레 떠올린다. 떠올리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것이 지금은 외려 당연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아빠의 손목에 다소곳이 채워져 있던 굵은 시계밴드의 색깔이 멋지다고 느꼈던 언젠가일지도 모르겠고,
째깍째깍 소리가 좋다 아버지께 졸라서 결국은 해와 달 별이 예쁘게 자수실로 프린트된 그 시계를 선물받고서
호기롭게 잃어버리고 나선 얼마 후, 같은 반 누군가의 손목에 그것과 같은 시계가 매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을 그 언젠가였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어렸을때의 꽤나 작았던 내가, 친구에게 한번쯤 그 시계 어디에서 났느냐고 물어볼까, 를 수십번 고민하게 할 만큼. 손목시계는 내게 묵직한 매력이었다.
독특했던 그 손목시계는, 어쩌면 정말 잃어버린 내 것이었을지도 모르고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누군가의 오래된 서랍에서 멈춘 채로 먼지를 먹고 있을 지도 모르고.
언젠가 생을 다해, 그,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의 그 어딘가의 틈새에서 째깍, 시간을 좀먹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0대. 나는 내 손목에 늘 일정한 무게를 달고 다녔다. 수업을 듣고 싶지 않을 때는 초침만 세고 있을 때도 있었다. 숫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내게 참 잔인하면서도 솔깃한 진실이었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는 매번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어깨 근육을 움츠렸다. 시험지에는 숫자에 따라 책임감이 매겨졌고, 학급번호에 따라 당번이 매겨졌다. 그런 숫자의 삶에 나는 익숙해져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누구도 내 손목을 신기하게 보는 일이 없었노라고. 당연하게 돌아가는 숫자들의 삶에서 나는 자유로울수 없었고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는 일만큼 학생스럽게 자연스러운 일이 그때 당시에는 없었을지 모른다. 열 세살. 그 때 잃어버린 시계의 일이 서서히 잊혀질때 쯤, 아마도 바깥 액정 화면에 크게 시계가 보이는 핸드폰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각 전자회사에서는 앞다투어 '나는 최신형 시계이기도, 전화가 가능한 기계이기도 해. 심지어 가끔은 카메라가 되기도 하지.' 말하는 물건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언젠가부터는 손목에 시계의 무게를 지고 다니는 것이 상당히 새삼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손목에 늘 달려 있었던 그 익숙한 무게가 시간을 넘어 아무렇지 않게 손목에서 익숙하게 자취를 감추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에 대해 이야기할때 '넌 핸드폰을 시계로만 쓰는구나.' 가 시덥잖은 유머가 되곤 하던 그 어떤 시절부터 나는 , 다시금 새삼스레 그 손목시계의 무게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가끔 사람들의 손목이 우아하게 곡선을 긋는 것을 보면서 '음, 시간을 읽는 사람이야.' 하고
바보처럼 까륵거리던 언젠가들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화면을 스윽, 스캔하는 움직임보다
여전히 잠시 멈춰서서 손목을 드는 그 무게감이 좋고
누군가의 손목에 매여있을 그 무게가 새삼스레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자,
시간을 읽는 그 아무렇지 않은 제스처가 제법 로맨틱한 일이구나. 싶어 잠시 피식 웃게 된다.
이제는 약을 갈 시기를 자꾸만 놓치는 손목시계를 꺼내어놓고 잠시 시간을 읽는 언젠가의 내 모습을 꺼내본다.
어쩌면 잠시 멈춤 버튼을 눌러 두고, 손목을 들어 시계를 바라볼 순간조차 어느 순간 틈에 버려두는 것은 아닌가 싶더라.
그 로맨틱하고 즐거운 순간들을 위해, 이제는 멈춘 시계에 시계약을 넣으러 근처 시곗방에 들러야겠다.
최근 새 집으로 사 들고 들어왔던 반짝거리는 전자시계가 수명을 다했다.
숫자를 디지털로 크게 표시해 주던 녀석에게 잘가라, 인사해주고
새로 들인 것은 숫자가 크게 박힌 아날로그 시계다.
눈을 들어 숫자를 보고,
그 시분침이 스멀스멀 정직하게 움직이는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