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소장하던 시절의 애틋함에 대해서.
옛날 앨범속 사진 한 장을 가만히 들여다본적 있나요.
누구에게나 한 권쯤, 펼쳐볼 수 있는 기억 뭉치 한 권쯤은 있다. 앨범 속 사진들은 빛이 바랜 채로 맥락에 맞춰 고스란히 혹은 비뚜름하게 어느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의 나나 너나 우리나, 이제는 흐릿한 기억의 어느 장소에서 익숙하지만 어색한 포즈로 정면이나 측면을 응시하고 있다. 모르는 생경함처럼 느껴지지만 분명 언젠가 어디선가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광경이다. 잊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있었던 기억들이 갑자기 등장한 조연처럼 기억이 날듯 말듯한 멘트들을 쏟아낸다. 선명하지 않지만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그 순간을 어렴풋이 기억해내지 않던가. 없었던 것처럼 잊고 지냈지만 그건 있었던 순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빛이 군데군데 들어간 필름처럼 흐릿하지만 사진들은 거기, 그 자리에 있었음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설명한다. 그래. 우리는 그때에, 그곳에 있었다.
지금 그 기억은 사진을 보는 순간 다시 기억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앨범을 넘기다가 유난히 선명한, 혹은 다시 한번 떠올리고 싶은 기억의 어느 언저리에 멈춰서는 순간 우리는 그 이미지에 잠시 머문다. 사실 머무는 그 순간도 사진으로 기록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될 것이므로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과거들을 지나치는 순간들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미 죽어버린 채로 기록된 어느 과거의 언저리는 움직이거나 숨 쉬지 않지만 기억하고자 하는 그 순간부터 다시 이야기가 된다. 다시 생동감을 띄는 것이다. 어릴 때의 사진을 가만히 보며 나는, 그리고 당신은 이야기한다. 이때 어땠었지-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 어떤 느낌의 기억이었는지. 자세하지는 않지만 뭉뚱그려진 소재들로도 추억은 훌륭하게 완성된다. 오래된 기억들은 그렇게 엉성하지만 따뜻한 모양을 갖춘다. 흩어졌다 다시금 모양이 되는 한 장.
사진이 가질 수 있는 재현성은 그래서 더 경이롭다.
옛날 앨범을 펼치는 시간.
사진을 정적인 자세로 찍는 것이 당연했을 법한 지난날의 기억이 담긴
당연히 먼지가 쌓였을 엄마의 옛날 사진첩을 열어보았다.
엄마, 아빠의 옛날 사진에서 내 얼굴의 어느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조합되는 순간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외려 생경한 느낌마저 든다.
언젠가 생생히 그 순간을 남겼을 사진은, 사실 이미 죽어버린 순간들을 붙잡아 고착화시킨 한 장의 이미지일 뿐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그렇게 차갑고 단단한 이미지 한 장이 가진 힘은 굉장하다. 언젠가의 순간이 지나가버리는 순간에 이렇게 담기지 않았다면, 내가 누구와 닮았는지 누구의 흔적이 어떠했는지 그 시간 속 순간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먼지만큼도 남지 않아 그것이 이미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되었겠지. 싶다.
올해 여름, 아버지의 여덟 번째 기일을 보내며 새삼스레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참 그리워졌었다.
어쩌면, 이렇게 손에 만져지는 기억이 아니었다면 추억하는 일은 조금 다른 모양의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를 소장하던 시절의 애틋함.
최근 한 장짜리 사진을 정적인 자세로 깔끔하게 촬영하는 것이 인기라고 한다. 대세가 복고라지만 정자체로 된 한글 간판의 사진관들이 흑백사진이나, 정적인 예스러운 사진들을 작업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여러 가지로 미묘한 기분이 든다. 그 언젠가의 누군가들은 아기의 백일이나 돌을 기념하기 위해 동네 언저리의 사진관을 찾았고, 8*10inch로 프린트된 그 사진을 앨범 한편에 소중히 꽂아두곤 했다. 이미지를 자유로이 소모하거나 소비하기 이전 시대의 일이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그 필름을 인화해 앨범에 꽂아두고 앨범 마지막 페이지에는 매직으로 적어 라벨링을 한 필름을 끼워두던 시절도 있었겠지. 우리 어머니가, 우리의 할머니가 그러했듯이.
터치 한 번으로 앨범을 열고 손가락을 몇 번 사용해 sns에 여행 사진을 업로드하고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 쉽게 사진 파일을 전송하는 요즈음의 우리에게 손으로 만져지는 인화물을 마주한다는 것이 어떤 질량의 무게일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어쩌면 '이미지를 소장하던 시절의 애틋함' 이 유난히 따뜻하고 생경하게 느껴지는 시대를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생각한다. 소장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을 위해 손으로 만져지는 기억을 조금 더 많이 만들어봐야겠다고.
주변인들의 따뜻한 얼굴을 찍을 때마다 손에 만져지는 마음을 선물하자.
언젠가 조금 더 분명한 모양의 추억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