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서 고마운 당신에게 말을 거는 방법.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대화가 아닐까,
누구나 나를 알아주는 한마디에 마음을 열고 헤아리는 마음 한 줄에 무게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대화를 하는 방법이 썩 녹록지는 않은 것 같다. 마주 보고 앉아도 적당히 무례하지 않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하고 상대방의 말에 적절한 타이밍에 '그렇지, 맞아, 그래' 리액션도 해 줘야 하고 이야기하기 전에 '이 사람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순간들도 거쳐야 한다. 어느 정도 습관도 취향도 알고 있는 사람이고 호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하는 즐거움만으로도 그 어려움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글쎄, 그 사람의 말에 올바른 온도로 화답하기. 어쩌면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이 없다면 쉽지 않은 , 아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조심스레 살피고, 그 사람의 표정을 알아채고 말하는 습관을 들여다보고 어떤 화제에 대해 조금은 느릿해도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꽤나 의미 있고 즐겁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관계의 신호탄이며, 보통은 무관심으로 살살 전진하는 과정을 거쳐 보통은 무뎌지곤 하니까. 대화를 시도하고 의견을 빗대 보고 공감하고 반응한다는 것은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 '나는 아직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요'라 표시하는 동시에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일종의 사인 같은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더 오래된 관계'에서 대화에 대한 중요성은 빛을 발하곤 한다. 앞에 앉은 익숙한 그 사람이 내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어떤 표정으로 반응할지 이미 나는 알고 있다. 이미 끝을 아는 시나리오 같을 것이다. 조금은 재미없고 지루한, 오래도록 알고 지낸 사람과는 나누는 대화의 스펙트럼도 점차 줄어든다. 어제저녁으로 먹은 떡볶이의 매운맛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에는 신선했다가 나중에는 '뭐, 그래서 그 캡사이신이 어쨌다고? 니 스트레스에 도움이 되었다고?' 정도의 화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당연하고 익숙한 관계라면 더더욱. '당연히, 당연한' 대화 주제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경우들이 생긴다. 그렇게 공감의 과정이 조금 축소되고, 반응을 보이는 순간들은 조금씩 줄어들고 표정에 떠오르는 밋밋함이 당연스레 여겨지는 날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심드렁한 주제들. 익숙해서 편안하지만 굳이 해야 해? 생각되는 이야기.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잖아?' 착각하게 되는 이야기와 이야기들.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마음을 부대끼며 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언젠가 별 일 아닌 이야기들도 탁구 치듯 깔깔대며 주고받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이리 통, 튕기면 저기서 퉁. 화답하는. 어쩌면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그런 식으로 어느 허공에 휙- 하고
조그만 족적들을 수많이 남기었을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10대 시절의 언어를 모아 시집을 냈던, 일본의 타와라 마치는 그의 시집 샐러드 기념일에 시 한 편을 이렇게 적었다.
'춥지?' 하고 말을 걸면
'춥네'라고 대답해 줄 사람이 있는 따뜻함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듯 고마운 사람에게
너무 당연한 주제로 핑, 대화 사인을 한번 보내 보면 어떨까.
퐁, 하고 대화가 이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
대화가 생각처럼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별거 아닌 이야기를 토옥,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관심의 온도를 재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