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공간에서 버티기.
생각만큼 안 된다.
'그런 날도 있죠, 힘을 내요.' 노래하는 옛날 가수에게
그래서 어쩌라고요, 반문하고 싶은 날이 있다.
천근만근, 하루를 버티기도 버거웠는데 다음날의 일정을 미리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날.
그동안 힘껏 해왔던 것들이 손가락 지문 틈에 끼이는 먼지보다도 하찮게 느껴지는 날.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그간의 삶이 잘못처럼 느껴져 움츠러드는 스스로가 먹먹해지는 날.
익숙한 감각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날.
시간을 맞추어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들을 바깥 어느 틈에 줄줄이 끼워두고
내일의 희망 따위가 다 뭐람. 낡은 포차 앞을 지나치며 잠시 눈물이 핑 고이는 날에는
집 안을 들어선 이후에도 약속된 듯 라벨링 되어 나나, 그대를 기다리는 일상적인 것들이 있다.
구두를 벗고, 바닥을 디디고, 양말을 벗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하루가.
어쩌면 이런 날도 필요하지. 언젠가 태연히 이야기했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무겁게 느껴지면 빨래통에 빨랫감을 가득 던져 넣고 그냥 집 안에서 길을 잃는다.
바닥에 자근자근한 무언가가 부대끼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도
아침에 먹은 설거지거리가 남은 걸 기억하고 있어도
그제 널어둔 빨래가 아직 개켜지지 않은 채 베란다 냄새를 먹고 있다는 걸 보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공간이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을 모퉁이에 턱, 들어앉아
제삼자가 된 느낌으로 구부정, 허리를 굽힌 채로 아무렇게나 앉아보는 거다.
생각하면 어느새 주책 맞게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고. 그래, 안다. 스스로의 감정을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란 건 그렇게 녹록지 않다고. 건너편에 걸어오는 네 살배기 아이가 동네가 떠나가라 울고 있어도 그걸 부러워하는 것도 조금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그게 통념이고 그게 지금이란 걸.
'이건 그렇지' '저건 그렇지.' 잘 아는 것도 없으면서 가끔은 정의랍시고 읊게 되는
오늘의 나는 다섯이고 싶은 서른다섯이다.
허기가 찬다. 로맨틱하게 우울한 날엔 내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 같다. 냉장고를 열어 과일 하나를 꺼낸다. 알의 어느 부근에 까만색 점이 네댓 개 보인다. 서걱서걱 아무렇게나 잘라낸다. 나선형으로 잘라내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손 바깥쪽으로 보낸 사람처럼 마뜩잖은 솜씨로 칼질을 하니 서걱서걱 과육이 참 서툴게, 많이도 잘려 나갔다. 못생긴 것들을 까만색 접시에 담아낸다. 포크로 찍어 맛을 본다. 냉장고에 있었으니 순도 100%의 시린 맛이다.
남은 과육의 불규칙한 모양이, 먹을 수 없는 조각이 접시 위에 딱 두어 조각 남았다. 시계를 본다. 지금은 오후 아홉 시 삼십 사분.
꼬다리의 모양을 한 그것을 빈 눈으로 자근자근 씹어 삼킨다.
길을 잃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미친다. 깨끗이 비워진 접시는 내일이나 모레쯤 깨끗이 씻겨질 것이다. 거기는 어때요, 묻고 싶은 마음을 벽 그림자에 흔들흔들 뉘인다.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있지 않나요, 억지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종일 내가 원한 게 아닌 미로 안을 떠돌다가 정작 쉬는 공간에 돌아와도 익숙하게 모르는 것들이 나를 기다리는 것이 진저리 치게 싫은 그 날. 있잖아요 그렇죠.
이런 날, 우리는 길을 잃죠.
나쁠 게 있나요. 오늘만 게으르면 되는 건데.
아무나 그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은 해야 하는 걸 열심히,
아니. 하지 않아도 괜찮아.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