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 달라진 게 있다면, 여행에서 배운 거지근성으로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폰 4로 연명하던 여행살이 끝에 고국에 돌아와, 휴대폰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지인으로부터 받은 아이폰 5로 한 달에 휴대폰비로 만 원만 내고 있다. 하지만 휴대폰 보다 노트북 사용 빈도수가 높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맥북은 과감히 사두었다.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정말 필요한가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몇십 번을 물음 한 뒤 선택적으로 낭비하는게 여행 후 요즘의 나다.
과거에는 데이트한답시고 매일같이 드나들던 인터넷쇼핑몰 장바구니에 가득히 쌓아뒀던 최신 유행하는 옷 들이며, 매달 한 번꼴로 하는 각종 로드숍 할인 행사에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외치며 열심히도 사제꼈던 화장품 지출과 달리, 한 달 반 째 의류비 등 외적 지출에 제로를 기록했다.
물론 데이트할 남자친구가 없어서 인건 절. 대. 맞다. (먼산)
남의 시선에 뒤 쫓겨 흥청망청 낭비하던 한국 대학생활을 뒤로하고 떠났던 호주에서의 삶은, 지금의 미니멀리즘(?)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던 건 사실이다.
호주에 간지 얼마 안 돼서의 일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충격적인 차림새를 버스 창문 너머로 봤던 기억이 또렷하게 난다.
나시에 반바지를 입은 스웩 넘치는 흑인 오빠가, 임수정의 어그 부츠를 어여쁘게 신고 길가에 서있던 그날. 아. 이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인가! 한여름에 어그 부츠라니!!
더위를 먹은 건지, 계절감을 상실한 건지, 발바닥에 땀띠 나는 건 아니냐며 한국인 표 오지랖을 열나게 랩핑하며 흑오빠를 훔쳐보며 키득대던 건, 만원 버스 안 나 혼자였다. (알고 보니 어그 부츠는 서핑을 하고 나와서 체온 유지를 위해 신는 신발이란다.)
우리나라였다면, ‘너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미친 거 아니야? 안 더워? 왜 그걸 신고 나왔어?’라는 온갖 고나리질(잔소리)이 난무했을텐데,
다른 사람의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 지적을 잘 하지 않는 외국인들은 이렇게 말했을게 분명하다. '뭐. 걔는 발이 시려서 그걸 신었나 보지.’ 여기서 그들은 남과 나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명제가 명확하게 성립한다는 것 이다.
외국에서의 긴 타지 생활 끝에 나에게 자연스레 생겼던 가치관 중 하나가, 일명 노상관(not your business). 그리고 비교하는 삶의 불행함과 행복의 주체는 나라는 확실성이었다.
돌아와 남을 비교우위 선상에 두지 않으니, 남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것에서 오는 불충족이 해소되었다.
일 년간 여행 내내 추울 때면 선택의 여지없이 입어야 했던 머스트 해브 아이템! 후리스 잠바 한 장 보다, 옷장 안에서 옷을 ‘선택’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요새는 웃기게도 행복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