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쿵 Oct 11. 2017

그렇게 나는 떠났다






청춘,

잃을 것도 바랄 것도 없는 내 나이 스물 다섯에 세계여행을 시작하다.





꺼내놓은 패딩을 보고선 엄마가 물었다.


"어디 겨울 나라 가나 봐?"


적절한 타이밍을 엿 보고 있었는데 먼저 선수친 엄마의 물음에 민망한 듯 웃음만 나왔다. 말하자면 미쳤다고 할게 분명하고, 등짝 싸대기는 덤이겠지..



몇 일 후,



엄마 아빠와 함께 둘러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던 그 날 저녁,

성큼 다가 온 출국 날짜에 더는 미룰 수 없겠다 싶어 그동안 내 목구멍을 간지럽히던 '세계여행' 이라는 단어를, 그 날 처음 입 밖에 꺼내었다.


그리고 찾아온 긴 침묵. 나는 뜨거운 불 판 앞 타오르는 낯짝을 애써 감추며 애꿎은 삼겹살만 뒤적거렸다.


정적을 깨고 나온 엄마의 첫 마디.


"애지간히 해라 이젠."

(=어지간히 해라, 적당히 해라, 그만해라)


8개월만 지내겠다고 떠났던 호주에서 1년 9개월을 보내고,

나는 졸업은 이미 했어야 했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나이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가방끈 긴 게 쪽팔리다는 단점 말고 뭐 다른게 있나 생각해보니, 돌아올 목적이 있다는 숨은 장점이 있었다.

졸업 후 떠났다면은 돌아와 맨땅에 헤딩일 테니깐. 돌아와 사회생활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는 기간을 복학과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호주에서 굳게 마음을 먹고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이 무한대로 생겨나 내 발목을 덜컥 잡았다.


떠나기 한 달 전, 터키 공항 테러와 이탈리아 지진 등의 뉴스 기사들을 읽고서는 밑도 끝도 없이 죽음에 대하여 걱정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비극의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말로 떠날 거면 유서를 쓰고 떠나야 하나 섬뜩한 생각도 해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미리 끊어둔 터키행 비행기 티켓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세계여행을 갈지 말지 고민이 된다고 몇몇 지인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친구놈 하나가 지금 모아 온 돈을 어떻게 가치있게 쓸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참 의미 없게 돈을 금방 쓰게 되더라고. 허무하게. 근데 그 돈, 네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여행에 보태는 게 좀 더 가치 있지 않아?”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러면 돈은 어디서나 벌고 모을 수 있다고 치면, 내 시간은 어떻게 벌 수 있을까. 학생일 땐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고. 직장인일 때는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던데.

내가 직업을 갖고 다시 떠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은 여전히 아니오였다.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



그렇게 나는 떠났다.






청춘,

잃을 것도 바랄 것도 없는 내 나이 스물 다섯에 세계여행을 시작하다.






식상한 문장이지만,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하잖아요. 단조로웠던 이전의 삶과 달리 저는 여행을 통해서 험난한 풍파들을 하도 많이 겪어서 그런지, 드디어 인간몬으로 진화(?) 한 것 같아요. 앞으로 여기에 여행 이야기를 짧게 적어 보려고 해요. 글을 잘 쓰는 작가도 아니고 글을 즐겨 읽고 쓰는 사람도 아니라서 많이 서툴겠지만, 여행하며 적어 뒀던 메모들을 참고해서, 의식의 흐름대로 여행하면서 있었던 해프닝이나 느꼈던 점 들을 담백하게 솔직하게 써 보려고 해요. 느낀 점이라고 하면, 아마 여행에서 품었던 저의 중 2병 같은 질문에 답을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일 년 뒤에 읽고 이불 킥하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이 되지만. 동생 일기장 몰래 훔쳐보는 마음으로 재밌게 훔쳐 봐주셔요! 전체 공개 일기장이네요. 하하. 저의 다사다난했던 여행기를 간접 경험하고 싶은 분 들 혹은 앞으로 여행을 떠나실 분 들(뻘짓 방지, 꿀팁 확보) 께는 아주 도움이 되실 듯해요. 찡긋.





작가의 이전글 선택적 낭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