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 한팩의 기억

by 순진한 앨리스

초등학교 6학년 졸업기념으로 주흘산 발봉으로 등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주흘산은 경북 문경읍에 있는 산으로 해발 1,106m 정도 되는 산이었다. 나는 운동을 싫어했고, 특히 산에 오르는 건 더더욱 싫어했다. 졸업기념 등산이라니... 기념은커녕 고통의 시작이었다.

등산 당일 도시락을 싸야 했는데 하필 전날 부모님이 다투셨다. 엄마는 아침부터 방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나는 밥도 못 먹은 채 계란프라이 두 개로 간신히 도시락을 챙겼학교에 도착했다.

주의 사항을 듣고 산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점점 혼자 뒤처지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 거리며 열심히 쫓아가야만 했다. 겨우겨우 따라가던 중 드디어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학교에서 간식으로 두유랑 빵을 나눠 줬다. 나는 아침도 못 먹은 터라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간식으로 나눠준두유랑 빵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런데… 나는 두유를 못 먹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우유는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두유는 입에 맞지 않았다.

베지밀도 A는 못 먹고 B만 겨우 먹을 수 있었는데, 그날은 그런 구분조차 잊은 채 허겁지겁 마셔버렸다.

배를 채우고 나서야 “앗, 나 두유 못 먹는데!”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힘든 졸업기념 등산이 끝나고 다음날 학교에서 감상문을 제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두유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써서 제출했더니 선생님은 그 글을 읽고 "허허"웃으셨다.

그 웃음은 왠지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땐 그 두유 한 팩이 그렇게 큰 사건이 될 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날의 허기와 당황스러움, 그리고 선생님의 웃음이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

지금도 마트에서 두유를 보면, 그날의 산길과 숨소리, 그리고 선생님의 웃음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배고팠던 날이자 가장 따뜻했던 날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