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키는 법을 배운 날
어릴 적 나는 알약을 잘 삼키지 못했다.
항상 가루약을 물에 타서 숟가락으로 떠먹곤 했다. 쓴맛이 입 안에 퍼질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게 나에겐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기생충약을 나눠주는 일이 있었다. 반 전체가 함께 복용해야 했는데, 그 약이 하필 알약이었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알약 못 먹어요”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채, 속으로만 걱정하며 전전긍긍했다.
어떡하지… 어떻게든 먹어야 하는데…
결국 나는 알약 하나를 조심스럽게 목 끝까지 밀어 넣고, 물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알약은 생각보다 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 순간, ‘나도 알약을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기뻤다.
그 뒤로 나는 조금씩 알약을 먹기 시작했다.
하나씩, 천천히, 그때 그 방식 그대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알약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삼켰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여러 개의 알약을 아무렇지 않게 입 안에 털어 넣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 이제 나 알약 잘 먹네.’
그 생각에 괜히 뿌듯하고 기뻤다. 물론 아직도 큰 알약은 한 번에 삼키기 어렵지만 말이다.
그 기생충약 사건은, 내게 인생의 작은 전환점이었다.
말은 못 했지만 스스로 해낸 첫 시도.
그리고 그 뒤로 조금씩, 하나씩, 결국엔 여러 개도 거뜬히.
어릴 적의 불안, 내성적인 성격, 혼자서 해결하려는 마음.
그리고 결국엔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까지
알약 하나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건 단순한 복용이 아니라, 조용한 용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