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났다.
리원은 진남의 차가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 속에 담긴 흔들림을 잊을 수 없었다. 그건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날 밤, 리원은 다시 해지의 그림 앞에 앉았다.
작은 소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그 눈빛은 더 간절해졌었다.
리원은 조용히 속삭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그 사람... 이제 곧 너에게 말할 거야."
다음 날 저녁, 리원은 다시 편의점을 찾았다.
진남은 계산대 뒤에서 조용히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진남은 고개를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원은 계산대 앞에 조용히 서서 말했다.
“저희 집에… 해지의 그림이 있어요. 그 아이가 그 안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어요.
혹시…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진남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고, 그 안엔 따뜻함이 있었다.
진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원의 집.
작은 방 안, 해지의 그림이 걸려 있는 벽 앞. 진남은 문턱에서 멈춰 섰다.
그림 속 소녀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 눈빛이 진남을 향하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리원은 조용히 말했다.
“이 아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진남은 그림 앞에 천천히 다가가 그 앞에 앉았다.
손끝이 떨렸고, 숨이 막혔다.
“해지야…"
그는 처음으로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불렀다.
. “미안해. 그날… 나는 널 지켜주지 못했어. 도망쳤고, 외면했고, 너를 잊으려 했어.”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너는 나를 잊지 않았구나. 그림 속에서도, 꿈속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리원은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았다.
방 안은 고요했고, 해지의 그림은 말이 없었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조금 부드러워진 듯했다. 진남은 그림을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이제… 너의 이야기를 말할게. 너의 억울함을… 내가 대신 풀어줄게.”
그림 속 해지를 바라보며 진남을 이야기를 했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날 오후, 놀이터는 평소처럼 평화로웠다. 해지는 모래성을 쌓고 있었고, 진남은 그 옆에서 나뭇잎을 모아 왕관을 만들고 있었다.
“아저씨, 이건 해바라기 왕국이야. 나는 공주고, 아저씨는 그림자 기사!”
해지의 웃음은 해맑았고, 진남은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에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놀이터 입구 쪽에서 철진이 나타났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낡은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진남은 그 눈빛을 보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
진남은 철진이 있는 놀이터 입구로 갔다.
철진이 진남이를 보고 말을 했다.
“야, 저 꼬맹이 부모 오늘도 바쁘지? 지금 데리고 나가면 아무도 모를걸.”
진남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형, 그만해. 안 하기로 했잖아. 그 애는… 그냥 아이야.”
하지만 철진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아이니까 더 쉽지. 그럼 넌 빠져.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그는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 해지에게 다가갔다.
“해지야, 아저씨랑 잠깐 가자.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해지는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싫어요. 아저씨 무서워요.”
진남은 그 순간, 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철진은 해지의 팔을 잡으려 했고, 해지는 비명을 지르며 놀이터를 벗어나
골목으로, 그리고 사거리 차도 쪽으로 달렸다. 진남은 뒤늦게 따라 달렸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진남은 그림 앞에서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날… 나는 막을 수 있었는데…
겁이 났어요. 형이 무서웠고,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몰랐어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해지는… 나를 믿었는데… 나는… 도망쳤어요.”
리원은 그런 진남이를 보며 말을 했다.
"그때 경찰에라도 솔직하게 얘기했으면 그 범인을 잡았을 거 아니에요?"
그러자 진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때 철진이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너 경찰한테 내 얘기 입도 뻥끗해 봐 죽여버릴 테니까. 하고 협박을 했어요 철진이 형이 워낙 무서운 사람이라 겁이 났어요" 진남은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리원은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말없이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림 속 해지는 오늘따라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