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제가 살던 동네에는 저와 동갑내기 친구가 딱 두 명 더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셋이 함께 끈끈하게 지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셋 사이에는 늘 긴장감이 감도는 '못된 친구'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셋 중 공부를 제일 잘했던 A였습니다. 영리했지만, 그만큼 잘난 체가 심했고, 늘 교묘하게 한 명씩 따돌리며 나머지 두 명을 조종했습니다.
“너, 오늘부터 쟤랑 놀지 마!”
이 한마디는 그 시절 우리의 절대적인 규율이었습니다. 저와 친구 B는 순진했고, 그 말 한마디 앞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복종해야 했습니다. 사실 놀고 싶은 마음보다, A에게서 소외되어 '완전히 혼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리를 짓눌렀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참 어렸고, 순진했으며, 스스로의 감정을 지킬 줄 모르는 나약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리더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의 말에 토를 달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번갈아 가며 외톨이가 되는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B와 저는 소심한 '반란'을 모의했습니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 학교까지는 초등학생 걸음으로 약 20분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는 그 길을 묵묵히 혼자 걸어가야 했죠. 그래서 우리는 약속했습니다. 따돌림을 당하지 않은 친구가 앞에서 걸으며, 뒤처진 친구에게 "빨리 따라와." 하고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주기로 말입니다.
그날은 제가 따돌림을 당하는 차례였습니다. A와 B는 앞서 걸었고, 저는 그 뒤를 쓸쓸히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앞서 걷던 B의 작은 움직임이 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빨리 잘 따라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소매 속으로 숨기듯, 아주 재빠르고 은밀하게 보낸 손짓. 저는 그 신호를 보고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혀 따라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손짓 하나가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A에게 대놓고 '우리는 너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던 B와 저에게, 그 손짓은 가장 절실한 마음의 언어였습니다.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아."
"나는 너랑 놀고 싶어."
"너 혼자 아니야."
그 조심스러운 신호 하나 덕분에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었고, 그 소외감과 외로움이 깊은 상처로 남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A는 4학년이 되던 해 도시로 전학을 갔습니다. 남겨진 저와 B는 그 이후 지금까지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가끔 어린 시절의 그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는 "우리 그때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하고 있었지?" 하면서 배꼽을 잡고 웃곤 합니다.
결국 그 시절, B와 제가 시도했던 그 작고 소심한 몸짓은 성공적인 반란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대단한 외침은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그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때로는 가장 소심한 용기가, 가장 큰 외로움을 이겨내는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