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사유

아직 가는 중입니다

결과는 다음 결과를 위한 또 하나의 과정이다

by 아말

올해가 돼서야 진짜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부터 스스로 성찰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그럴만한 사건들의 도움을 받았다. 사실 그전까지는 나를 부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부정보다는 착각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내가 되고 싶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실제 나인 줄 알고 살아왔다. 그래서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른 채.


많이 부족하고 어설프고 꽤나 많은 잔잔한 실패들. 나름 다시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애쓰던 과정의 나를 실패(?)라는 결과를 감추기 급급해 직시하지 못했다. 내가 기대하는,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전공하며 운 좋게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한 가지 언어를 하면 그다음은 쉽다고 했던가. 23살에 독학으로 시작한 영어도 재밌었다. 영어를 더 하기 위해 영어강사로 일을 시작했고 해외에 나가 공부한 언어들을 더 사용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나도 그 정도면 보기 좋겠다 생각했던 승무원에 도전했다. 수도 없이 떨어졌고 2년이라는 한국인 채용 중단의 기간도 있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다시 자세히 얘기하기로 하고.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에어아시아와 카타르항공, 두 개의 외항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했다. 언어처럼 항공사도 하나 다녀보니 그다음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라는 역병이 돌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땅에 내려오게 되었다. 내가 설계해 놓은 나의 모습과 현재 모습의 엄청난 간극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고 이는 곧 몸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속 그렇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어아시아와 카타르항공 사이에 공백에서 취득한 필라테스 자격증을 가지고 동생이 운영하는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강사로 약 3년 가까이 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내가 필라테스 강사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름 괜찮은 수치의 성과에도 동생을 돕기 위해 시작했다는 사실과(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그리던 타이틀이 아니었기에 인정하지 못했다. 당연히 허한 느낌에 만족하지 못했고, 불행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잘하는 게 뭘까를 생각하며 나라는 사람을 브랜딩 할 때쯤 워너뮤직 코리아에서 새로 만드는 댄스 레이블 회사의 운영과 브랜딩을 맡아줄 것을 제안받았다. 아티스트가 소속된 회사로 키울 예정이기도 했지만 댄스 아카데미로서의 수익도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학원 경력이 있고 브랜딩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 제안을 한 모양이었다. 지금 하는 일과 새로운 일 사이에서 고민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위염과 소장염이 왔고 링거를 맞으며 답했다. 하겠다고. 이유는 간단했다. 이 제안은 지금이 아니면 유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가 오픈하고 약 6개월 만에 폐업 예정을 통보받았다.(나중에 들으니 회사 내부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쯤 되니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럼 그렇지.'


1층에서 2층, 3층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 혹은 엘리베이터를 찾아 타는 것보다 이상적인 루프탑만 바라보던 나는 계속 1층이었다. 어쩌면 올라갔다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해 계속 1층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1층에 있다.


그렇게 올해부터 나라는 사람의 존재와 쓸모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적어도 이번에는 망가지진 않았다. 한 번 해보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버텼다. 쉬지 않고 버텼다. 10년 만에 토익을 보고, 스피치 과정을 수료하고, 승무원 수업도 하고, 한국어교원 수강을 하며 스피치 모임도 운영 중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보통 이런 글들은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들이 많이 쓰던데.)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부터 이런 기복의 결과들을 이뤄내기 위한 과정들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1층에 있는 나는 아직 내 인생의 결과가 아니라는 아주 간단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성찰을 하면 통찰을 하게 되고 반성을 하면 발전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 가는 중이다. 이제 목적지를 향하는 나의 여정 또한 소중하게 살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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