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빛이 사라졌어요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에 들어와 필라테스 강사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뜻밖의 프레임에 나를 맞추는 중이었지만 여전히 나는 다양한 직업과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소통했다. 회원님들을 규칙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이는 승무원 시절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나와 그들 사이에 관계라는 게 형성되는 것이다.
나와 또래인 의사 경민이.
그녀는 나의 가장 오래된 회원이자,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나는 주로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인데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선생님, 요즘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이 있든 없든 나는 화들짝 놀랐다. 실로 이런 질문을 받은 기억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나는 되물었다.
"그런가? 왜요? 무슨 일 있어 보여요?"
나는 예민하면서도 둔하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는 둔하고 신체는 예민하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머리로는 인지를 못하고(혹은 부정하거나) 신체 반응으로 드러나면 그제야 알게 된다. 그럼 생각해 보기 시작한다.
직업의 변화와 한국살이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차츰 나아지며 카타르항공에서 총 3번 정도의 재입사 제안을 받았다. 너무 힘들게 적응하고 있던 터라 선뜻 가고 싶지도, 그렇다고 거절하고 싶지도 않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렇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였고 티를 내진 않았지만 누군가 알아봐 준 것이다.
"선생님한테 보이는 빛이 있어요. 근데 요즘 그게 꺼졌어요."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나한테서 보이는 빛이라니. 어떤 색깔일까? 조도는 어떨까? 그걸 봐주는 사람이 있구나.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라면 보이지 않았겠지. 관계 속에서 보이는 빛이겠지. 나는 타인의 빛을 봐주는 사람이었던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밤 비행기 이착륙 시에는 기내 조명을 모두 끈다. 만일의 사태에 시스템이 모두 셧다운 될 경우를 대비해 우리 눈이 미리 어둠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가 가진 빛이 꺼지면 내 주변은 어두컴컴해지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눈은 점차 그 어둠에 익숙해질 것이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진 빛이라는 놈을 살려두고 싶었다.
저마다 빛이 있다. 좋은 관계 속에서 그 빛은 더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서로 밝혀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 빛을 찾아오는 사람들.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빨간색이든 저마다 빛이 있다.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