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보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
내가 단발로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먼저 자른 친구 때문이었다.
무튼, 나는 미용실에 따라갔고 기다리며 잡지들을 뒤적뒤적거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얼마나 달렸는지도 알게 되었고 요즘 핫한 흑백요리사 안성재 셰프의 인터뷰 기사도 보게 되었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부분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요리를 만드는 행위보다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
15년 동안 강사 혹은 승무원으로 살며 8세부터 80세까지의 학생과 한국인부터 전 세계인을 만났다. 강사든 승무원이든 내가 좀 더 알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친다고 소문날까?'
'어떻게 하면 덜 힘들게 비행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시간과 돈을 쓰는 이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이 잘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 내 요리에만 치중했고 그것을 맛있게 먹어줄 사람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기계처럼 일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 보니 지쳤다. 물론 보람된 일이지만 지금에 비하면 확실히 그 느낌은 훨씬 덜하다. 만족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게 아마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인생의 전환점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내 행위'에 중점을 두기보다 내 행위가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진심으로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강생들을 만나고 있다. 물론 내가 하는 말과 경험, 혹은 내 수업이 무조건 맞거나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다 보니 만족감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홀로서기를 하면서 이전의 승무원이나 소속 강사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수입이 없다는 게 아이러니할 정도로 말이다.
어제 친구를 만났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그녀가 나를 아는 것이 더 정확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다. 그 친구는 오래전 장난 삼아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오바마랑 오찬을 해도 만족 못할 애야."
욕심도 많고, 열심히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는데 왜 이렇게 불만족스러운지 몰랐던 나날들이었다.
어제 그 친구가 헤어지면서 말했다.
"지금 너의 모습이 낯설어. 근데 너무 편안하고 보기 좋아."
"언제 이렇게 컸지? 항상 응원할게 유땡아(이 친구만 부르는 나의 별명)."
오랜 시간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부족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감사와 책임감을 느낀다. 지금의 성과만 본다면 누가 봐도 나는 실패 중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전보다 편하다. 그리고 이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앞으로도 사람들이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요리할 계획이다.
멋들어진 요리를 내놓을 생각을 하는 사람의 요리와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요리가 과연 같을까? 잘난 강사와 잘되길 바라는 강사의 수업이 과연 같을까?
요리하는 돌아이의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엄마 밥이 가장 맛있는 것처럼 매너리즘이 아니라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