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여성들을 위해 기록합니다 - 화학적 유산
왜인지 모르게, 그냥 해야 할 것 같아서, 임신테스트기를 해봤다. 어..? 어.....? 오른쪽에 선명한 빨간 줄 옆에, 희미한 또 다른 빨간 줄이 점점 짙어진다. 이게 뭐지?
남편을 불렀다. "ㅇ..오빠.. 일루 와서 이것 좀 봐봐.." 남편은 또 내가 무슨 장난을 치는 줄 알고 헬레벌레 웃으며 다가왔다. "응???? 이게 뭐야??? 두 줄이야??????"
2016년 결혼할 당시, 나는 남편에게 선언했었다. "나 5년만 신나게 일 하게 해 줘. 아기는 그다음에 갖자. 그거 아니면 나 결혼 못해." 그때는 몰랐다, 5년이 이렇게 빨리 갈 줄.
그리고 2021년 7월,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아니, 찾아온 줄 알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선생님, 제가 어제 테스트기를 해봤는데 두 줄이었어요!!" 선생님은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혈액검사를 해보시죠."
그러고 나서 오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hCG 수치가 170 정도로 나왔는데 이게 임신이 맞는 숫자긴 한데요..."
한데요..??? 근데요???
"근데... 숫자가 더 높아야 하거든요. 2주 뒤에 다시 내원하셔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네요. 일단 그 사이에 푹 주무시고 잘 쉬시고 무리하지 마시고.. 그렇게 지내세요."
에이.. 별일 없겠지. 남들도 다 이렇게 며칠 있다가 수치가 오른다는데, 나도 그렇게 되겠지. 생각하고는 가장 친한 친구들 두어 명에게 소식을 알렸다. "나 임테기 해봤는데 두 줄 나왔어! 그리고 병원 갔는데 임신 맞데!!"
남편도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에 방방 떠있는 기분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태명은 뭘로 할까, 요즘 엄마들은 무슨 어플을 쓰나, 나도 맘 카페를 가입해야 하나? 부모님들께는 언제 어떻게 말하지? 이벤트라도 해야 하나?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찾아온 주말, 혹시나 싶은 마음에 병원에 다시 방문을 했다. 나에게 오라고 한 날짜는 7월 20일이지만, 선생님을 만나서 좀 더 확실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음.. 170이면 수정이 된 것 같기는 한데.. 이게 착상이 되고 잘 크는 아가라면 숫자가 더 높아야 하거든요.. 그렇게 보기에는 숫자가 낮긴 해요. 일단 오늘 다시 피검사를 해보시죠. 빠르면 오후 중에, 늦어도 월요일 오전에는 결과받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두 번째 피검사를 했고, 결과는 167이었다. 살짝 불안해졌다. 왜지??? 왜 숫자가 두 배, 세 배가 되지 않았을까..??
주말이 지났고, 또 월요일이 되자마자 바로 병원을 찾았다.
"이게 숫자가 이러면 안 되거든요.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것 같아요."
"그러기에는 선생님, 제가 임신 초기 증상 같은 걸 겪었거든요, 한밤 중에 생리통 심할 때처럼 아랫배가 아파서 깬다던가, 골반이 쿡쿡 쑤신다던가 하는 것들이요."
"네.. 그러실 수 있는데.. 일단 그럼 다시 한번 혈액 검사를 해보시겠어요?"
그렇게 세 번째 채혈 표를 받아 들었다. 이번에는 빈 속으로 피 뽑지 말아야지. 너무 불안한 생각도 말아야지. 채혈실 가기 전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가방에 챙겨 온 식빵을 뜯어먹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또 170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안돼... 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거야? 왜?? 아직 우리가 엄마 아빠 될 준비가 안 된 건가?? 혹시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고 남편한테 이야기 한 걸 얘가 들은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꾸역꾸역 하루를 보냈다.
남편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전문가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만, 왜 이런 건지, 이러다가 수치가 올라갈 수도 있는 건지, 정말 희망이 없는지 충분하게 설명이 되지 않아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저녁을 먹는 내내 둘 다 울상이었다. 지난주 월요일만 해도 행복하기 그지없었는데, 불과 일주일 사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날 밤, 자려고 누워있는데 남편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 없어?" 그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계속 엉엉 눈물이 났다.
"마음이 너무 힘든데, 근데 일은 해야 해.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머리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생각은 하는데, 마음이 그게 안 돼.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을까. 왜 하필, 지금, 이런 걸까. 하늘은 감당할만한 시련을 주고, 모든 고난 속에서 인생의 교훈도 하나씩 준다는데, 이렇게 엿같은 경우는 왜 생기는 걸까, 도무지 납득이 안 돼. 고작 일주일 있었던 걸로,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나, 믿기지도 않고, 그냥 너무너무 마음이 복잡해."
그렇게 30분을 넘게 울었고, 남편은 계속 나를 안아주었다. 자기도 너무 힘들다고, 힘든 나를 보는 것도 힘들고,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주변에 아빠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그럴 때일수록 더 위로 잘해주고 남편이 마음 잘 가듬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고.
다음 날 아침, 유례없이 퉁퉁 부운 눈으로 일어났고, 도무지 이 상태로 출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오전에는 재택근무를 하고 오후에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퇴근 후에는 오랜만에 소고기를 먹자고 나가서 비싼 밥을 먹고도 둘 다 마음껏 배부르지 않았다. 정말, 정말 아닐까? 믿고 싶지 않다. 애써 다른 이야기를 해보다가, 이 얘기가 나오면 또 울상이 되고, 그렇게 저녁을 보냈다.
아침이 밝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마음이 급해서 주차도 대충 빨리 해놓고 올라갔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빨리 의사 선생님을 다시 만나야겠어.
"정상적으로 잘 착상되고 잘 크는 아기라면 지금 숫자가 170에서 몇 배는 더 커져야 하는데요.. 그러지 않아요. 화학적 유산이거나 계류유산이 될 것 같고요. 이렇게 하루 이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소파술로 자궁을 깨끗하게 하고, 다음번 생리를 기다린 다음 다시 임신 시도를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소파술은 마취하고 해야 해서 8시간 금식하고 보호자가 같이 오셔야 하니까 남편 분이랑 일정 맞춰보시고 수술 날짜 잡으시죠."
'유산', '소파술', '다음'...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제대로 크지 못하는 아가니까 한 마디로 얼른 떼어내는 게 낫다, 그건가.
어찌어찌 얘기를 마치고 네 번째 채혈을 하러 갔다. 이게 마지막 채혈이다. 이번에도 숫자가 낮게 나오면, 희망이 없다. 근데.. 진짜 만에 하나.. 만에 만에 만에 하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피를 뽑고 1층 카페로 내려왔다. 도무지 바로 운전을 해서 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수박 주스.. 시럽 빼고 주세요."
자리에 앉아서, 임신 소식을 알렸던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이야기를 했다. "나 주말에 수술해야 할지도 몰라."
친구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바로 전화를 했다. 친구랑 통화를 하면 카페에서 너무 많이 울게 될까 봐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을 했다. 그리고 창가에 앉아서 고개를 숙였다. 채혈해서 5분 동안은 꾹 눌러야 한다는 오른쪽 팔을 붙잡고, 눈물을 또 뚝뚝 흘렸다.
하루 종일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집에 돌아오는 길 태연의 Fine이라는 노래 가사가 들렸다.
"찢어진 종잇조각에 담아낸 나의 진심에
선명해져 somethin' bout you
Yeah 나를 많이 닮은 듯 다른 넌 혹시 나와 같을까 지금
괜한 기대를 해
하루 한 달 일 년쯤 되면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가
나는 아니야
쉽지 않을 것 같아
여전하게도 넌 내 하루하루를 채우고
아직은 아니야
바보처럼 되뇌는 나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 없어
It's not fine"
정말 괜찮지 않았다. 연애하다 겪는 이별보다 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애써 눈물을 닦으며 겨우 집에 돌아왔다.
솔직히 '아기? 생기면 좋지! 안 생기면 어쩔 수 없고 ㅠ 언젠가 때가 되면 생기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임신, 유산, 수술 이런 단어에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전혀 아니었다. 진짜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고 심장 소리 한 번 듣지도 못했는데도, 그냥 그렇게 됐다는 말 한마디에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애써 꾹꾹 눈물을 삼키다가도,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줄줄 났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까, 그렇게 꾸역꾸역 또 하루를 살았다.
찾아보니 나와 같은 케이스는 정말 흔한 일이었다. 오전에 통화를 못 한 친구와도 밤에 다시 통화를 하는데 주변에 그런 케이스가 몇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내 지인 중에도 있었다.
직접 아는 사람 중에 이런 내 상황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지인 둘에게 이야기를 했다. 모두 같은 일을 겪어서인지 깊은 공감과 위로를 해주었다. 내가 살면서 처음 겪은 이 상실감도, 겪어본 이들과 이야기를 하니 한결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지영, 지금 마음은 지옥 같겠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자궁이 깨끗해지고 더 튼튼해져서 결과적으로는 더 건강한 아이가 찾아오게 된다더라고. 나도 그랬어. 곧 좋은 소식 또 있을 거야."
지인에게 추천을 받아 기존에 다니던 산부인과가 아니라 다른 산부인과를 가보기로 했다. 기존에 다니던 산부인과는 건물도 지은 지 얼마 안 되었고 규모도 꽤 큰 산부인과에 의사 선생님들도 젊은 편이었다.
새롭게 가게 된 산부인과는 역사가 50년이 넘은 병원으로, 3대가 그 병원에서 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전통이 있는 곳이다. 의사 선생님들이나 간호사 선생님들도 조금 나이대가 있는 편이었다.
3시로 예약을 잡고 갔는데도 꽤 오랜 시간을 대기해서 원장 선생님을 보러 들어갔다. 그동안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선생님은 단번에 "초음파부터 보시죠."라고 했다.
그런데 전날 밤부터 약간의 피가 비치는 현상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조금 더 양이 많아진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건 괜찮으니 일단 초음파를 찍어보자셨다.
결과적으로는 아기집의 형태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자궁 내벽도 임신 수준보다는 덜 두꺼웠다.
몇 마디 말을 많이 나눈 것도 아닌데 의사 선생님은 마스크 너머 내 표정을 짐작하셨는지,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좋은 것 많이 먹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며 격려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혈액 검사를 하자고 했다. 수치가 170에서 정상적으로 내려가고 있으면 자연 탈락한 것으로 봐야 하니까, 추적해보자고.
병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남편은 원장 선생님의 말을 전해 듣고는 이내 납득을 했다. '그래도 바로 초음파를 봐주셔서 좋았다'며 앞으로는 오늘 옮긴 산부인과로 다니자고도 덧붙였다.
일주일 만에 찾은 산부인과. 선생님은 다행히 지난번 혈액 검사 결과 수치가 5로 매우 낮게 나왔다고 말씀해주셨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처음으로 임신테스트기 두 줄을 보았으나, 아기가 제대로 착상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떨어져 나가 '화학적 유산'이 된 것이다.
다행히 별도 수술을 하거나 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보통 계류 유산 현상이 오래될 경우 (첫 번째 산부인과 선생님이 나에게 권했던 것처럼) 소파술을 해야 하는데 나의 경우는 그것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사실 수술은 정말 하기 싫어서, 가능하면 한약의 힘으로라도 자궁 상태를 깨끗이 하려고 했었다. 자궁계 질환을 한 번도 앓아본 적이 없는데, 첫 번째 수술을 소파술로 하게 된다면 억울하고 슬플 것 같았다.
7월 한 달 동안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굉장히 기뻤다가, 또 굉장히 슬펐다가... 진짜 문자 그대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되었던 건 역시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을 누군가를 위해 또 기록해두고 싶었다.
나의 경험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마지막 생리 시작일 기준으로) 5주 차쯤에는 임신 초기 증상을 비슷하게 겪었다. 갑자기 생리통 하듯이 아랫배가 아프거나, 잠이 몰려온다거나, 골반이 쿡쿡 쑤신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6주 차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너무 평소 같은데? 싶을 정도였다. 이게 임신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일이 없었다. 보통 아기가 잘 자리를 잡으면 이 시기부터 입덧이 심해진다고 한다. 나는 입덧의 이응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러고 7주 차 말에 생리처럼 출혈이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때도 굉장히 아프거나 생리통이 심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한약을 먹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8주 차 때는 완전히 혈액 검사 수치가 낮아진 걸 확인했다. 평상시의 몸 상태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부인과에 갔을 때 원장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실 화학적 유산에 대해서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아요. 과거처럼 추적을 안 했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일을, 임신테스트기나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함으로써 알게 되는 경우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걸 유산으로 보지는 않아요.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해요."
만약에 내가 처음 임신 테스트기를 하고 첫 산부인과에 방문한 7월 5일에 이야기 들었던 것처럼, 2주 뒤에 7월 20일 이후에 산부인과를 갔더라면, 이 모든 일이 없었던 게 되었을 수도 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임신이 잘 된 줄 알고 2주 동안 지냈다가 화학적 유산이라는 결과를 받아 들고 더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고.
하지만 후회는 없다. 누구보다 내 몸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나니까. 갈 수 있을 때 병원에 가고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또 새로운 병원에도 가본 것도 모두 잘한 것 같다. 너무 한 병원, 한 의사 선생님에게만 의존할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 달 동안, 몸보다 마음이 훨씬 더 힘들었다. 아무리 많은 후기 글을 찾아봐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진짜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조금이라도 그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주체가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런 일이 생긴 게 내 탓도, 남편 탓도 아니고 그냥 생기는 일이 생긴 것뿐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납득이 안 되어도 괜찮다고. 나도 그랬다고.
이 과정이 다 쌓여서 우리는 더 성숙한 부모가 될 것이라고. 언젠가 만날 아가에게 한 없는 사랑을 쏟아주기 위해, 감사하기 위해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고. 이런 일을 완전히 털어내거나 잊을 순 없겠지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어른이 되리라 믿자고.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두 줄이 나온 임신 테스트기'를 버렸다. 우리 아기가 더 건강해져서 다시 찾아오기를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