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뚜껑 글래드락 도시락 한 끼]
키쉬. 키슈. 끼시. 끼슈.
Quiche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약간 고민이 됩니다. 저는 '키쉬'라고 말하지만, 사전에 단어를 검색하고 영어와 프랑스어 각각 음성 아이콘을 누를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마치 프랑스인 친구가 자기 이름을 소개하지만, 미안하게도 들리는 입장에서는 익숙지 않은 발음에 약간 어색하게 되물어 보는 상황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키쉬 한 입 먹으면 긴장감이 사르르 녹으며 호감이 생깁니다.
제가 키쉬를 처음 먹은 것은 미국에 있을 때 입니다. 교환학생으로 약 1년 정도 있었는데, 학교 카페테리아 안에 델리 음식을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모양은 분명히 파이인데 전혀 디저트가 아니어서 물어보니 키쉬라고 했고 (그렇게 들렸다)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동그란 파이의 정확히 4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를 턱 잘라서 곁들임 샐러드와 함께 받았습니다. 파이 '한 조각'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두배 크기를 줘서 약간 놀랐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처음 먹었던 키쉬는 시금치가 들어있던 것 습니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노릿노릿한 필링 사이에 진녹색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도시락 메뉴를 고민하다가 키쉬가 생각난 것은 미국을 떠나고 거의 4년이 지난 후 였습니다. 지금도 미국 생각을 하면 너무나 행복하고 좋은 기억뿐이지요. 그때의 기억을 꺼내서 음식으로 만들면, 다시 4년 전의 행복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키쉬를 만들었습니다. 갓 나온 키쉬의 둥그렇고 노릇노릇한 자태는 풍요롭습니다. 그런데 키쉬를 자르려는데 갑자기 고민이 되었습니다. '키쉬는 디저트가 아니라 한 끼 식사인데 내가 얼마나 먹어야 되는 거지?', '4등분? 6등분? 8등분?', '한 조각이 얼마난 거지?'
*원본 영상: https://youtu.be/4 oMA_tHuxss. 원본 레시피에서 약간 변형했습니다.
# 재료 (지름 18cm, 높이 3.5cm 타르트 틀 1개, 200도 예열)
-파이: 박력분 130g, 찬 무염버터 60g, 계란 1개, 소금 1/4 tsp
-필링: 베이컨 100g (얇은 베이컨 X), 양파 1개 (슬라이스), 계란 3개, 생크림 180ml, 그뤼에르 치즈 35g (치즈 강판에 얇게 갈기), 설탕 1/2 tsp, 소금 1/4 tsp, 후추 적당량
# 방법
1) 파이 만들기
(1) 박력분과 찬 무염버터를 푸드 프로세서에 갈아 크럼블 형태로 만든다. 버터가 밀가루에 적당히 섞였다면 계란과 소금을 넣고 살짝 뭉칠 정도로 10초-15초 정도 섞어 준다.
(2) *TIP* 종이호일이나 유산지를 넉넉하게 자르고 그 위에 반죽을 놓는다. 손으로 종이 양 끝을 잡고 반죽과 덜 뭉친 가루들이 한 데 모이도록 안쪽으로 모아준다. 한 덩어리로 뭉칠 때까지만 살짝 해준다. 이렇게 하면 작업대도 손도 더러워지지 않고 깔끔하게 반죽할 수 있다.
(3) 종이로 반죽을 래핑 하듯 꼭 감싸고 냉장고에 2시간 30분 휴지 시킨다.
(4) 밀대에 밀가루를 묻히고 반죽을 타르트 틀 크기보다 약간 커질 정도로 밀어준다. 틀에 꼼꼼히 담고 밑바닥을 포크로 찌른다. 이때 반죽이 좀 질어지면 냉장고에 10분 정도 다시 넣어 굳힌다.
(5) 반죽 위에 아까 쓴 유산지를 구겨 깔고 그 위에 누름돌이나 쌀이나 콩을 가득 담아준다. 200도에서 25분 정도 구워준다. 완성 후 식혀준다.
2) 필링 만들기
(6) 베이컨을 1cm 두께로 썰어주고 팬에 넣고 10분 정도 충분히 가열해서 기름이 빠지고 약간 바삭해질 정도로 만든다. 다 된 베이컨은 키친타월에 받혀 따로 빼 준다.
(7) 베이컨 구운 팬에 양파 슬라이스를 넣고 20분 정도 중약불에 볶아 카라멜라이즈 한다. 바닥이 타는 것 같으면 물을 조금 넣어 디글레이즈 하며 볶으며 소금을 약간 추가한다. 밤색이 되고 숨이 죽을 때까지 볶는다.
(8) 계란, 생크림, 설탕, 소금, 후추를 볼에 넣고 잘 섞어준다. 볼 대신 저그(jug)에 하면 나중에 타르트에 얌전하게 부어줄 수 있다.
3) 완성된 타르트 틀에 1/2 분량의 양파 - 베이컨 - 치즈를 잘 퍼뜨려 올리고 (8)의 계란물을 반절 정도 부어준다.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1/2 분량의 양파-베이컨-치즈를 올려준다. 타르트 틀을 꽉 채우되, 넘치지 않을 정도로 계란물을 부어주고 맨 위에 치즈를 더 많이 올려도 좋다.
4) 180도 오븐에 30-35분 정도 구워준다. 윗 면의 색깔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보며 익혀준다.
5) 충분히 식힌 후 먹는다.
키쉬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은 레시피를 검색해서 알았습니다. 미국에서 먹었던 키쉬도 처음에는 시금치가 들어있었지만, 매번 항상 내용물이 조금씩 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 내가 만든 키쉬는 베이컨과 캬라멜라이즈 양파가 주재료이고, 클래식한 키쉬(일명 키쉬 로레인)입니다.
생각해보면 파이를 4등분 해서 담으면 그리 예쁘지 않습니다. 뾰족한 부분이 90도 각도다 보니 포크로 앞 코를 콕 찍어서 먹기에는 조금 크지요. 고민하다가 키쉬 한 판을 6등분 했습니다. 60도. 보기에도 예쁘고 풍족해 보입니다.
저에게 한 조각의 크기는 6등분 크기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제가 먹은 것은 두 개가 들어가니 120도이고 전체 파이의 3분의 1을 먹었네요. 누군가에게는 한 조각의 크기가 더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 크기가 어찌 되었든 자기에게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맛있게 배부를 수 있는 양만 딱 먹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크기와 양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키쉬 한 조각, 한 입을 먹으며 지금 그 순간의 나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