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ful Eating | 마음챙김 먹기]
한식 양념하면 보통 간장,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참기름이 빠지지 않는다. 이 4가지 양념으로 거의 모든 반찬과 국, 일품요리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참기름. 참기름은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거의 모든 한식 요리의 마지막에 들어간다. 참기름 한 바퀴 돌려서 버무려야 요리가 완성이 된다.
나는 참기름에 익숙해져 있기도 하고 집에서 들기름이나 들깨를 넣은 음식을 잘 먹지 않다 보니 들기름의 향과 맛을 잘 몰랐다. 먹어봤자 백반집 들깨 순두부, 정월 대보름에 먹는 나물에 있는 들기름 양념 정도가 내가 접한 들기름의 향이었다.
그러다 내가 들기름의 신세계를 느낀 것은 지난 4월 한국사찰음식문화원에 사찰음식 만들기 체험을 했을 때다. 호박잎 빡빡장(=강된장)과 아욱 솥밥을 만들었는데, 절밥이 그렇게 맛있다는 말을 확실하게 경험했다. 특히 호박잎 빡빡장은 몇 번이고 집에서 더 만들어 먹을 정도로 내게 감동을 준 맛이었다.
두 요리는 공통적으로 채소를 들기름에 볶은 후 조리한다. 보통 된장찌개나 강된장을 할 때 채소를 된장 푼 육수에 넣고 끓이는데, 스님께서 알려주신 조리법은 채소를 우선 들기름에 중약불에 슬슬 볶아서 맛의 기반을 잡는 방식이었다. 구체적으로 가장 먼저 들기름에 버섯을 5-8분 정도 볶아서 버섯의 감칠맛과 들기름이 어우러지게 둔다. 그러면 냄비에 뽀얀 육수가 생긴다. 감자와 호박, 양파를 넣고 또 10분 정도 들들 볶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채소에서 나오는 수분으로 육수가 더 진해진다. 물이나 채소육수를 채소가 잠길 정도만 넣고 한번 끓인 다음, 된장과 강판에 간 감자를 넣어 한소끔 끓여 완성한다. 마지막에 청고추나 홍고추를 넣으면 맛이 깔끔해진다.
완성된 강된장의 냄새를 맡아보면, 막상 들기름을 많이 넣었음에도 들기름 향이 강하게 나지 않는다. 하지만 먹어보면 된장의 구수함 뒤에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 있다. 먹을수록 고소하고 은은한 향이 난다. 향긋하면서 깊은 맛이 계속 입안을 채운다. 그 많던 들기름은 놀랍게도 된장과 다른 채소의 맛을 방해하지 않는다. 되려 채소를 들기름에 볶아서 육수를 만들었기 때문에 맛이 잘 어우러진다. 만일 들기름 대신 참기름을 넣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기름 찌개가 되었을 것이다. 참기름 향은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들기름 향은 조금 약하다. 하지만 특유의 신선하고 가벼운 느낌이 있다. 그래서 맛을 강화하기보다는 있는 재료들이 어우러지도록 조용히 서포트한다.
노란 뚜껑 유리병에 들어있는 들기름. 들기름 단독으로 지닌 매력보다도 다른 재료가 맛있게 어우러지도록 만드는 역할이 마음에 든다. 내가 만든 음식은 강된장이었지만, 그 강된장의 맛을 낸 것은 들기름이었다. 들기름의 저력과 매력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