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에 대한 불편한 진실
한국엔 진정한 멘토는 없고, 꼰대만 넘친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멘토가 필요하지, 꼰대는 필요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멘토랑 꼰대는 같은 말이다.
꼰대랑 멘토가 같은 말인 이유는 두 단어에 대한 구분이 오로지 자신의 감성에 의해서 구분될 뿐 의미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사람에게는 말이다.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은 크게 의미가 없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이야기 하는 사람이 비호감이면, 꼰대요, 아무리 내용이 개판이어도 그 사람이 호감이면, 멘토가 된다. 객관적인 잣대, 그런거 필요 없다. 오로지 감성으로만 그 구분을 한다.
그래서, 감성이라는 잣대를 걷어내고 나면, 이 둘은 같다.
당신이 멘토로 생각하는 사람은 꼰대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은가? 왜? 그들의 강연이 감동적이니까? 울림이 있으니까? 그들이 강연을 하고 책을 쓰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당신같은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 자신의 사업이나 권력에 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감정의 이면에는 누군가에게 꼰대질을 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고, 이 카타르시는 꼰대가 가지는 그 감정선과 명확하게 일치 한다.
진정한 의미의 멘토는 당신에게 울림을 주느냐, 당신이 호감을 갖느냐로 판단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 자체로 판단 되어야 한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당신이 진정한 멘토로 고려 할 수 있는 후보군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신을 키워준 부모나, 당신과 오래 일한 직장 상사나 석박사를 지도해줬던 지도교수나, 어린시절 당신을 가르친 선생님정도가 당신의 멘토가 될 수 있는 후보군이다. 그리고, 그중에 여전히 "당신"(대중이 아니라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만이 당신의 진정한 멘토가 될 수 있단 말이다.
당신이 어떤 이의 강의를 듣고, 혹은 그 사람의 책을 읽고, 호감을 느끼고, 감동을 받고, 당신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당신의 멘토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 사람들 또한 울림을 주는꼰대 일 뿐이니까.
덧.
해당글은 필자가 5년전 즈음에 소셜미디어에 적었던 글을 옮긴 것이다. 5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