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인테리어 하기 2

소통의 부재

by 아마NL

화장실 인테리어를 위한 자재를 구매하고 시공업체를 선정한 이후로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3월에 온다던 자재는 생산지 차질로 4월이나 되어서 받을 수 있었고 이에 따라서 공사 기간도 5월로 늦춰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집에 거주하고 있는 상태여서 쓸 수 있는 화장실(변기)이 꼭 필요했다. 시공업체는 1층과 2층 화장실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고 싶어 했지만 우리 사정에 맞춰서 2층 공사가 끝난 후 1층 화장실 공사를 하기로 얘기했다. 그리고 공사가 시작되기 전 우리 집라인에 있는 이웃들에게 편지를 돌렸다. 공사기간과 내용, 소음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우리 연락처를 남겨놨다.


5월 말 시공업체가 본격적으로 2층 화장실 철거를 시작했다. 타일과 기존에 있던 변기, 욕조, 세면대를 철거하느라고 온 동네가 시끄러웠지만 철거 자체는 하루 만에 끝났다. 1층 화장실은 철거하지 않았지만 구조상 2층 화장실 바로 아래 있어서 시공업체가 공사하는 동안에는 1층 화장실을 쓸 수가 없었다. 공사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참는 것이 고역이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3~4시까지 진행되는 공사 시간 동안 점심시간에 잠깐 근처 쇼핑몰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해결하곤 했다.


철거가 끝난 후 다음날 온다던 시공업체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공사 때문에 모든 일정을 재택으로 돌려놨는데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하루가 가버리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라도 줬으면 이해를 했을 텐데 연락도 없이 바람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날 늦게 오늘 왜 안 왔냐고 연락을 미리 줬으면 좋았겠다고 문자를 보내자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갔다고 미안하다면서 내일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또 다음날에도 바람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며칠 늦는다고 말을 해주던지 아님 내일 오겠다는 말이나 말던지! 난장판이 된 집에서 마냥 기다리는 것은 생각보다 스트레스받는 일이었다.


결국 월요일에 왔던 이 사람들은 그 주 목요일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철거 후 할 일은 새로운 배관을 내는 것이었다. 무지막지한 드릴로 콘크리트 벽과 바닥을 뚫는 일은 아주 많이 시끄러웠다.



우리 옆집에는 백발 대머리의 뚱뚱한 네덜란드 할아버지와 우리 또래로 보이는 필리핀 여자가 살고 있다. 이 둘에게는 어린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손자를 돌봐주는 할아버지인 줄 알았으나 본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해 이 할아버지의 생일 파티에는 65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아무튼 좀 특이한 이웃이라고만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웬걸 공사 중에 이 할아버지가 벨도 누르지 않고 우리 집 거실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온 것이다!


식탁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나는 난데없이 등장한 이 할아버지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네덜란드어로 뭐라고 뭐라고 말했다. 나는 네덜란드어를 할 수 없다 영어로 말하라고 하니 갑자기 자기는 많은 언어를 할 줄 안다고 하면서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요지는 드릴이 너무 시끄러워서 못살겠다는 것이다. 아기가 자꾸 울고 벽이 부서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게 무지막지한 드릴로 벽에 배수로를 내고 있으니 소음과 진동이 엄청 컸을 것이다. 게다가 1살 배기 아기가 있는 집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소음일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부드럽게 아 그랬냐, 미안하다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 있으니 남편과 얘기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는 나는 지금 너랑 얘기하고 있지 않냐며 완강하게 나왔고 나는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다짜고짜 현관이 열려있다고 벨을 누르거나 집에 누가 있냐는 인사도 없이 신발 신은 채로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까지 들어오다니 예의는 밥 말아먹었나. 그리고 고압적인 태도로 자기 불만만 말하면서 갑자기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둥 협박하는 것이 화가 났다.


너는 내가 동양인 여자라고 만만하게 봤지?


그러나 네덜란드살이 10년 차(당시 9년 차) 나는 깡다구와 악바리정신과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반격하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지금 네 태도가 굉장히 적대적이어서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보낸 편지에 내 남편 번호가 있으니 거기로 연락해라. 시끄러운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공사를 지금 당장 중지할 수 없다. 아기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너는 지금 우리 집에 벨도 누르지 않고 현관이 열려있다고 그냥 들어왔다. 고 다다다다 말하니까 이 할아버지는 약간 황당한 것 같았다. 한동안 나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이 일을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한테 말해주자 남편은 껄껄 웃으면서 경찰에 신고하면 무단침입한 지가 잡혀가지 그리고 네덜란드에선 법적으로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는 공사 소음은 아무런 문제없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다만 어린 아기가 겪을 고통과 앞으로의 이웃관계를 생각해 와인과 초콜릿을 사서 사과의 뜻으로 할아버지를 방문했다.


남편과 네덜란드어로 말해서 자세한 내용은 몰랐는데 처음에는 안 받겠다고 하다가 나중에 남편이 근데 너 우리 집에 그냥 쳐들어왔잖아라는 뉘앙스로 말하니 와인은 받았더랬다.


이웃과의 트러블이 있었고 공사도 삐걱삐걱거리는데 우리 집 화장실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