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통⑦: 아이가 먼저 말해줄 때

「육통(育通)」 — 육아에서 얻은 통찰

by 황호성

이상적인 하원길


늘 제가 먼저 물어야만 이야기가 흘러나오던 일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이 궁금해 끊임없이 캐묻던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습니다.


첫째 아이가 하원 후 공부방에 가는 길에서 스스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의 기쁨은 또렷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말했습니다.


“오늘 먼저 말해주니까 아빠가 기쁘네. 아빠가 늘 윤식이한테 물어봐야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윤식이가 스스로 말해주니 정말 고마워.”

둘째 아이도 하원하는 길에 새로운 친구가 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빠, 이 노래 알아?” 하며 동요를 불러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열심히 말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또 말했습니다.


“현식아 많이 말해줘서 고마워.”


기억을 인출하는 연습


수년간 독서 모임을 진행하며 마음에 담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기억의 인출”


그 동안은 기억의 인출이 지식을 습득하고 정리하고 발언하는 과정에서만 훈련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문득, 세상을 기억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 또한 기억의 인출을 훈련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은 기억을 꺼내는 순간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을 여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을 인출하는 훈련이자, 자신의 경험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기억은 반복해서 인출할수록 강화됩니다. Roediger와 Karpicke(2006)는 이를 “testing effect”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frequent retrieval enhances long-term retention more than repeated study”


또한 Fivush와 Reese(1992)는 다음과 같이 부모와의 대화가 곧 기억 인출 훈련임을 강조했습니다.


“the construction of autobiographical memory begins in early parent-child conversations about the past”


즉, 세상을 기억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상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 뇌를 단련하는 기억의 체육관과 같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말로 풀어낼 때, 그것은 곧 기억을 불러내고 재구성하는 훈련이 되며, 부모의 귀에 닿을 때 비로소 대화가 되고 관계가 됩니다.


기억이 쌓이길 바라는 바람


저는 꾸준히 책을 읽기 전에, 그리고 꾸준히 지식을 쌓기 전에, 먼저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풍성하게 풀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바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언어로 기억을 꺼내고, 그 기억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의 경험은 그 힘이 이미 아이들 안에서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 작은 증거였습니다.


질문


오늘 하루 동안,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전 06화육통⑥: 감정을 드러낼 때 시작되는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