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통⑯: 자라는 마음을 보는 법

「육통(育通)」 — 육아에서 얻은 통찰

by 황호성

점수를 보는 마음, 마음을 보는 점수


오늘 첫째 아이가 하교 후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받아쓰기 시험을 본 날이었고, 80점을 받아와서 저는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나는 머리가 똑똑하지 않은 것 같아”라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순간, 아빠인 저도 기준을 잃었습니다.
학교 점수는 잘 받으면 좋지만, 못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를 ‘똑똑하지 않다’고 단정짓는 순간, 단순히 “괜찮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이의 눈물 속에는 이미 누군가의 잣대가 자리 잡아 있었다.


공부방으로 향하는 길에 저는 천천히 말을 꺼냈습니다.

“아빠는 100점보다 윤식이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서 독후감을 쓰는 게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말에 윤식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관찰한 것을 들려주었습니다.
지금은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순간의 표정은 잊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점수보다 훨씬 생생한 인정받은 아이의 얼굴이었습니다.


스스로 해내는 힘


저녁 시간에는 또 다른 자람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평소보다 밥을 정말 잘 먹었습니다.


면도, 밥도, 키위도, 마지막엔 핫도그까지 — 한 번도 티브이를 끄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먹는 걸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식이 오늘 대단하다!” 하자 아이는 입가에 미소를 번졌습니다.
스스로 먹어내는 그 순간, 작은 성취감이 자리한 얼굴이었습니다.


‘먹는다’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도 아이는 스스로 해내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넓히는 한마디


그리고 막내인 셋째는 오늘 새로운 단어를 내뱉었습니다.
하원길에서 “선생님”이라는 말을 또렷하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입밖으로 내뱉었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시도와 기다림이 녹아 있었습니다.
단어 하나가 아이의 세상을 넓히는 것을 바라보는 일 — 그것이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람을 보는 눈


아이 셋의 하루는 각자 다르게 흘러가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자라는 아이’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점수가 오르지 않아도, 밥을 남겨도, 단어가 늦게 나와도 — 그 안에는 분명 자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아이의 점수를 보고 있는가, 마음의 성장을 보고 있는가.”


어쩌면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마음이 자라는 순간을 ‘눈으로 보는 일’이 아니라 ‘놓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세 아이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게 알려주었습니다.


질문


오늘 당신은 무엇의 ‘성장’을 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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