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통⑰: 가족이 자라는 순간

「육통(育通)」 — 육아에서 얻은 통찰

by 황호성

함께 자라는 법을 배우는 하루


오늘은 가족이 자라는 모습을 본 날이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동생들에게 “그건 불편하니까 하지 마”라고 말하자, 둘쨰 아이와 셋째 아이가 그 말을 듣고 멈췄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서로 울고, 밀치고, 울음으로만 끝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로 멈추고, 말로 수용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셋째 아이가 첫째 아이를 들이받았을 때도 첫쨰 아이가 단호하게 “하지 마”라고 했고, 셋째 아이는 그 즉시 멈췄습니다.
그 한 장면이, 우리 가족에게는 작지만 큰 변화였습니다.
누군가를 멈추게 할 줄 알고, 멈춰줄 줄 아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정교육의 빈틈을 마주하며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걸렸습니다.
며칠 전 셋째 아이가 놀이방에서 형, 누나들에게 들이박았고, 둘째 아이도 친구에게 장난을 치다 멍을 남긴 적이 있었습니다.
남을 해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조차 우리가 얼마나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남을 해치지 말라.”


이 짧은 말 속에는 수많은 감정의 조율과 관계의 기술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걸 단지 말로 가르칠 수 없다는 걸 계속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보여주고, 기다려주고, 함께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공조의 기억


아이들만 자라는 게 아니었다. 부모인 우리도 매일의 실수 속에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오늘 오전에는 첫째 아이가 스피커에 청진기를 들이댔다가 제가 화를 내며 혼낸 일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마음이 불편해 밖으로 나간 아이를 따라가 과한 훈육을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아내가 “윤식이가 집에 와서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아내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그 사실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건 이렇게 서로의 시야를 연결해주는 일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옛날 마을에는 모든 어른들이 육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공조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가정은 작지만, 그 안에서라도 서로를 지켜주는 공조가 필요합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제들까지 함께 배워가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말입니다.


성장의 증거는 변화의 순간에 있다


아이들은 이미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멈출 줄 알고, 멈추게 할 줄 아는 법을 배우고, 잘못된 행동 앞에서는 서로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성장의 증거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도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훈육의 순간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서로의 부족함을 나누며 ‘함께 키우는 법’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가족의 성장은, 아이가 크는 속도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해가는 속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금 더 ‘함께’ 자랐습니다.


질문


당신은 요즘, 누구와 함께 자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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