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Apr 28. 2024

AI번역이 그렇게 좋다는데 불문과가 다 무슨 소용이야?

불문과 졸업생이 말하는 불문과, 독문과 폐지와 인문학의 위기

20년 전, 수험생이던 나의 목표는 확고했다. 나는 불어불문학과에 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교실 뒤에 붙어있던 배치표에서 '어문계열', 혹은 '유럽어문'만 눈으로 좇았고 유럽어문학과가 없는 대학은 진정한 대학으로 치지도 않았다. '어문계열'이나 '유럽어문'이라는 단어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얼마나 가고 싶었으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설렐 정도이다. 그때도 어문계열은 인기가 없었지만 꼭 가고 싶은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재수를 하고 삼반수를 해서 겨우겨우 원하는 학교 불어불문학과에 들어갔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동아리도 안 하고 과 생활도 전혀 안 했지만 학문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대학 생활은 정말 즐거웠다.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렇게 사랑했던 외국어로 먹고살고 있다. 프랑스 원어민, 원어민과 같은 한-프 이중언어자, 조금만 배워도 프랑스어를 나보다 훨씬 잘하던 유럽인 틈바구니 속에서 꾸역꾸역 공부하면서 프랑스 대학을 졸업했다.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배운 학습자로서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던 상처가 자꾸 올라올 때면 다 그만두고 싶어 지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꿈꾸던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윤리학자, 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최근 동덕여대에서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를 폐지할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앞에서도 말했듯 20년 전에도 이미 어문계열, 특히 유럽어문계열은 인기가 없었고 이 두 학과는 대학 구조조정을 할 때 가장 먼저 통폐합 대상이 되는 동네북이었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많은 언론사에서 기사를 발행했다. 기사에는 꼭 '인문학 위기' 또는 'AI 번역 기술 발전'이라는 화두가 붙어 있었다. 


물론 인문학의 위기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도 그랬다. 그때도 독서를 안 해서 종이책이 위기였고 그때도 인문학이 존폐 기로에 서 있었다. 오히려 20년이나 살아남은 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렇게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을까? 서울권 대학에서 두 학과를 동시에 폐지하기는 처음이어서 그만큼 임팩트가 컸던 걸까? 아니면 이전과는 다르게 AI 기술의 발전에 의한 위기가 너무나도 실제적이고 직접적이고 또 즉각적이어서?


AI 기술의 발전은 정말로 경이로울 지경이고, 실제로 외국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코엑스에서 열린 'World IT쇼'에 다녀왔다. 올해 주제는 'AI가 만드는 일상의 혁신, 월드 IT쇼'였다.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AI 번역 기술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2년마다 휴대폰을 갈아치우던 20대와는 달리 요새는 휴대폰을 새로 살 필요성을 못 느껴서 새로운 휴대폰 수준을 전혀 몰랐는데 이번에 출시된 갤럭시 S24에 자체 AI 통, 번역 기술이 장착되어 있었다. 인터넷으로 기계 번역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대화 통역이 가능하다고 한다. 번역도 마찬가지이고. 


아직 100%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AI 기술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벽돌 만한 종이사전을 낑낑대며 들고 다니면서 수업을 듣던 10여 년 전의 내가 1초 만에 몇 천자의 텍스트를 번역하는 기계 번역기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6년 전 석사 논문을 쓸 때 도움을 받았던 구글 번역기와 지금의 구글 번역기의 성능은 천지차이이다. 번역을 해주고 요약, 정리까지 해주는 Chat GPT도 있는 현재는 구글 번역기와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을 사용하던 나 때보다 유학이 한층 더 수월할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어떤 기술이 짠 하고 나타날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수험생 시절부터 유럽어문계열을 목표로 했고, 결국 원하는 학교의 원하는 학과에 들어갔고,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가 유럽어로 먹고사는 나라면 작금의 이 사태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얼마 전의 나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어문학과가 외국어만 배우는 곳도 아닌데, 문학을 배우면서 얻어지는 게 얼마나 많은데, 대학이 취업양성소도 아닌데 왜 폐지를 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대 문학번역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pourquoi pas ? 왜 안 되는데? 이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 절대적인 성역은 없다. 안타깝지만 없어져야 하면 없어져야 하고 대체되어야 하면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밥줄이 끊어질지라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꼭 필요한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AI의 홍수 속에서,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몇 년 전부터 내가 해 온 고민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무기를 장착할 수 있을까? 아직 답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지만 그 답의 최종 목적지는 '인간'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기계는 가질 수 없는 인간의 형상과 지혜가 있으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형상을 닮아가려면 문학이, 인문학이 정답은 아니어도 정답으로 가는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이렇듯 인문학을 사용하는 우리 스스로가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의의와 가치를 찾아가고 미래를 제시할 때, 인문학의 위기는 기회가 되고 AI가 만드는 일상의 혁신은 나를 더 돋보이게 할 편리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를 폐지하면 안 된다는 거다.



Librairie romantique, E. Monnier & Cie éditeurs. Affiche, 188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