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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Jul 10. 2023

책과 우연들

김초엽

1) 책 읽기를 사랑하는 사람

2) 쓰기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

3) 우연한 책과의 만남, 책이 만들어주는 세계의 확장을 기대하는 사람

에게 추천합니다.




김초엽 작가의 에세이로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책들과 책을 통해 새롭게 열리는 세계에 대한 글이다.


김초엽 작가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탐험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SF소설 집필 과정에 만난 책들에 대한 소개도 많지만, 독서와 창작이 이어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책이라고 한다. 작가가 어디서 영감을 받아 글쓰기를 하는지 궁금해하던 독자이자, 새로운 책 소개받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서문부터 기대감이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가 너무 좋아서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뭉게뭉게 생겨나던 순간을. 어떤 이야기와 사랑에 빠질 때의 그 기분, 그것을 재현하고 싶다는 바람이 나의 '쓰고 싶다'는 마음 중심에 있다. (9p)



1.

작가는 SF를 읽으며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 단지 이 작은 행성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읽는다고.. 그러면서 소개한 균사체 네트워크, 지의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식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른 것처럼, 외계 어딘가에서는 인간 또한 감각이 떨어지는 작은 종족으로 보일 수 있다는 부분까지 읽으며 김초엽 작가 그리고 SF 작가들이 생각하는 세계란 정말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오랜 지구의 역사 가운데 스쳐 지나가는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가끔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지구 바깥까지 바라보는 관점은 없었는데 ㅎㅎ 덕분에 내 시야도 넓어지는 느낌이었달까!?


SF는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 SF에서 비인간의 존재들은 인간만큼이나 중요하다. (...) 어쩌면 유독 인간 바깥의 무언가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SF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우리가 상상하고 지각할 수 있는 세계 바깥이 무수히 많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가슴 벅차게 설레는 이들이라면. (27p)


인간은 아주 한정된 시공간 규모 안에서 살아가는, 그 규모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제대로 감지하지도 못하는, 작은 행성의 자그만 종족에 불과한 것이다. (...) SF는 인간중심주의라는 오랜 천동설을 뒤집는다. (37p)



2.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는.. 현업 인기 작가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에 대해서 동질감과 안도를 느끼게 되었고, 나의 글쓰기에 바로 적용하고 고려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있어서 도움 되었다.


가끔은 소설 쓰기를 낯선 여행자의 가이드가 되는 일에 비유한다. 나에게는 이 세계를 먼저 탐험하고 이곳이 지닌 매력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출발 지점에서, 낯선 여행지는 아직 내게도 안개가 덮인 듯 뿌옇게 보인다. 그렇지만 안갯속에서 초고를 쓰고,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하고 가져와 길목 구석구석을 점차 구체화하고, 또다시 쓰고 고치다 보면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공기의 냄새가 느껴지고 사각사각 밟히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온다. 시야가 점차 맑아지고 풍경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그 여행지의 풍경 속에 정말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쓸 준비가 된 것이다. (71p)


보통 당사자로서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저자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당사자로서 겪은 경험만이 아니라 그다음의 이야기일 것이다.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는지, 이 경험을 구조 속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나와 타인의 경험은 얼마나 같고 또 다른지. 그런 이야기까지 도달할 수 있어야만 개인의 경험은 사적인 서술에 그치지 않고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된다. (104p)


작가는 이 챕터의 말미에 논픽션 글을 쓰면서 많은 이들에게 도움 받는다는 내용에서,

나는 우리 각자의 앎이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도 오직 홀로만 탁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 (115p)

한다고 말한다. 다시 첫 번째 챕터와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인간이 혹 한 개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두 연결된 것 아닌가, 하는 부분 말이다.



3.

작가에게 영향을 준 작법서를 소개하는 부분도 고마웠다. 여기 언급된 작법서 중 일부는 읽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처음 듣는 것이라.. 김초엽 작가가 해석하여 요약까지 해주시다니 감사할 밖에..


[소설쓰기의 모든 것 5]에서는 '해당 장면에서 인물의 감정의 강도를 0부터 10 사이의 단계로 나타내보라' 같은 구체적인 조언을 준다. (...) 저자가 경험하기를, 감정의 강도가 5단계 이상이라면 '보여주기' 방식으로, 즉 장면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대화와 행동을 보여주며 전개하는 편이 낫고, 그 아래 단계라면 '말해주기'로, 빠른 장면전환과 요약으로 넘어가는 편이 낫다고 한다. (...) 나에게는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너무 단순한 조언보다 훨씬 유용한 조언이었다. (134p)


아이디어 하나에 의존하는 단편이 공모전에 많이 투고돼도 출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 바로 처음 아이디어에 두 번째와 세 번째 아이디어를 더 붙여보라는 조언이다. '하나의 아이디어로는 부족하다!' 이 책 [단편 쓰기의 모든 것]에서 거듭 강조되는 이야기다. (136p)



4.

이제 SF 쓰기로 넘어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 낯선 세계 간의 충돌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SF의 매력'이라고.


초점이 변두리에 있다는 것.(...) 같은 사건이라도 관점을 달리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SF에서 수백 수천 번 반복된 미지의 현상에 대한 발견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발견한 주체가 보스턴에서 야근을 하던 과학자인지, 효자동 동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에 낙서를 하던 여자아이인지에 따라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 SF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하는 것이라면, 초점을 변두리로 옮기는 일은 그것만으로 이야기에 SF다운 매력을 더한다. (176p)


SF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고, 모든 재미있는 이야기가 그러한 게 아닌가 싶어서 격하게 끄덕이며 밑줄을 그었다.



5.

책 후반부에서는 작가라서, 쓰는 사람이라서, 의무로 읽어야 하는 책들이 생기는데,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나를 울게 하고, 웃게하고, 가슴 벅차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쓰고 싶은 나'를 새롭게 발견한다.(189p)' 라고 한다. 난 작가도 아닌데 무슨 말인지 너무나 알겠었고,


책 리뷰를 읽으며 읽은 책 곱씹는 것에 대한 부분도 극렬히 공감할 수 있었다. 김초엽 작가도 독자이니까.


좋은 서평을 읽으면 여전히 그 작품 안에 머무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나에게 서평 또는 리뷰 읽기란 떠나고 싶지 않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세계를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거기서 천천히 멀어져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계속 이 안에서 머물 수는 없더라도 언제든 이 기억을 돌려볼 수 있게 정제하는 독후 활동이라고 할까. (197p)


나도 좋아하는 책을 만나면 꼭 내 감상과 후기에서 끝나지 않고, 남들의 리뷰를 찾아본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뭐라 정리했는지 읽으면서 나와 같은 내용이라면 동질감을 느끼고 내가 몰랐던 새로운 부분을 언급한 사람들의 글에서는 나의 부족함을 채운다. 그렇게 곱씹으며 책과 진짜로 안녕을 하게 되는 것이다.



6.

책의 제목과 같은 마지막 챕터, '책과 우연들'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어쩌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재미있는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아주 약간 열어놓는 것. 그것은 소설가로 살아가고 싶은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태도였다. 좋아하는 세계를 자꾸 의식적으로 넓혀나가지 않으면, 소설도 내가 편애하는 자그만 세계에 갇히고 말 테니까. (...) 대체로 나는 작은 책방에서 '이곳이 아니었다면 사지 않았을' 책을 발견해낸다. (...) 그 책들은 언제나 우연성을 가득 품고 있어서 나의 좁은 세계에 작고 큰 균열을 낸다. (231p)





나는 내 책 친구들의(팔로우하는 작가나 인플루언서 등의) 추천을 받아서, 혹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읽는 편이다. 나의 책 세계도 넓지 않은 편이지만, 김초엽 작가처럼 조금은 열린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하지 않은 새로운 책의 세계를 만나며 넓어지는 부분을 경험하곤 한다. 허지웅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가 자주 인용하는 니체의 글이 궁금해서 니체에 대해 읽었고, 그 뒤로 철학책 몇 권을 연달아 읽었다. 이번 '책과 우연들'에서 언급된 책들 중 몇 권을 저장하고 실제 구매를 하기도 했다. SFnal 이라는 단행본 모음집을 샀고, 배명훈 작가의 'SF 작가입니다' 라는 에세이를 주문했다. 믿을 만한 사람의 소개로 주로 읽는 분야를 넘어서는 책 구매는 대개 내 독서 세계, 취향의 확장으로 진행되어 왔다. 의도치 않은 확장이라 균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산 책을 다 읽고 오는 것에는 또다른 큰 기쁨이 있다. 그곳의 풍경과 공기와 냄새와 소리, 그리고 책이 하나의 감각 묶음이 되어 기억의 서가에 꽂히는 것이다. (231p)


나 또한 여행지에 갈 때면 책을 꼭 챙겨 가는 편이다. 가는 중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읽고 싶어서 기차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고, 짧게라도 숙소에서 카페에서 몇 장이라도 읽으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여행의 추억이 깊어진다. 돌아온 뒤에도 여행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아진다. 여행지의 즐거움에 읽은 책의 좋은 기억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언젠가 강릉 여행을 가는 길에 김혼비/박태하 작가의 '전국축제자랑'을 읽은 적이 있다. 기차에서부터 낄낄대며 읽다가 여행지 내내 낄낄 거렸던 기억이 뭉개져서 그냥 여행이 통째로 즐겁게 포장된 느낌?  그 책 자체가 과하게 웃기기도 하지만, 여행과 책이 좋은 의미로 뭉뚱그려진 것이다. 참고로 이 '책과 우연들'은 템플스테이 중에 직지사에서 읽기도 했다. 깨끗한 직지사의 하늘, 여유로운 저녁의 밤, 예불이 들리던 평화로운 새벽 시간, 이 모든 풍경이 이 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반대로 이 책이 그 풍경으로 남아 있다.










내가 왜 책을 읽고, 어떻게 책을 고르고, 책에서 어떤 때에 즐거움을 느끼는지에 대해서

나 대신 김초엽 작가가 정리해 준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이 공감이 된 책이었다.

쓰는 삶을 지향하지만 자주 쓰지는 못하기에(않기에) 작가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순정만화 같은 겉표지에 선입견이 생겨, 읽지 않을 뻔도 했으나, 그랬으면 어쩔 뻔.


어동페 피날레 행사인 김초엽 작가의 북토크 참석을 위해 구매했고, 사인을 받고,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읽을 수 있었고, 이 책을 만지고 듣고 느끼고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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