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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RANTH Jan 12. 2019

에필로그,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

2017년 11월 1일. 귀국 3일 만에 출근한 사무실. 


일은 원래 하던 일이니 원래 이 부서에 있던 사람 마냥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조직은 변한 것이 없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일하기 싫다고, 조직이 답답하다고 나에게 호소하는 동료들도 여전했다. 6개월 만에 영어가 얼마나 늘었나며, 자신의 동생도 미국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아직도 영어가 어렵다고 하는데 너는 늘긴 늘었냐며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를 비웃는 꼰대 상사들도 여전했고, 내가 일이 하기 싫어서 휴직을 내고 도망갔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던 상사도 여전히 정치와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열심히 하고 계셨다. 나의 일상도 출국 전으로 돌아가 아침에 일어나 공부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잠드는, 주말이면 집순이 생활에 최적화된 그런 생활로 다시 돌아갔다.



런던에서 너무 잘 먹고, 잘 살았기에 5kg이나 살이 쪄서 돌아왔고, 덕분에 직장 동료들에게 인사하는 내내 얼굴 좋아졌네 라는 말을 수십 번씩 듣곤 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표정이 달라졌다고. 낮엔 사무실에서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웃음으로 하하 호호하며 웃다가, 해가 지고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순식간에 밀어닥치는 어둠, 공허함, 쓸쓸함, 그리움, 슬픔과 알 수 없는 감정들에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는 이유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곤 했다. 


집에 들어오면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져 한참을 울며 누워있으면 동생은 말없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툭 쳐주었고, 평소 같았으면 딸의 이런 행동을 청승맞다고 호통쳤을 엄마이지만, 이제는 서로 진심을 알기에 내가 6개월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엄마도 잘 알기에, 그저 아무런 말없이 안쓰럽게 쳐다보시곤 했다. 그렇게 낮엔 웃고 밤엔 울고, 아침에 눈뜨면 현실이 분간이 안 가는 그런 시간들을 꽤 오랫동안 보낸 것 같다. 런던에 있을 때 내 주변의 이들이 말하던 그 시간 말이다. 회복하려면 런던에서 머물렀던 기간의 두배는 걸린다는 시간을.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내가, 예전과 똑같은 이곳에서 느끼는 새로운 감정들도 꽤나 많았다.

덕분에 내가 지금 한국에서 누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한국에서도 정말 부족함 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런던보다 쾌적하고 편리하고 저렴한 대중교통, 빠른 인터넷은 비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가 최고였고, 아프면 언제든지 병원을 찾아가 진료받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도 큰 장점. 은행이며 공공기관이며 그래도 런던과 비교하면 매우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 언제든지 편리하게 시켜 먹을 수 있는 배달음식이며, 안전한 치안까지. 여행으로 잠깐잠깐 외국을 다닐 땐 그저 외국이 마냥 좋아 보였는데, 잠깐의 외국 생활에서 돌아와 우리나라를 보니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게 실감이 났다.  


여전히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이지만 돌아올 수 있는 직장이 있었기에 런던에서 별 걱정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덕에 또다시 여행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났다. 동생이 멋진 직장을 가지고 나 대신 집을 지켜준 덕분에 6개월의 방랑이 가능했음이 고마웠고, 엄마가 건강하시기에 일할 수 있으시고,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으셔서 감사했다. 



복직을 하고 나서 첫 한 달 동안은 여기저기서 돌아와서 반갑다며 밥을 사주겠다는 동료들이 제법 많았다. 덕분에 한 달 동안 점심 밥값이 굳었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이 직장에 많다는 것에 그래도 8년 동안 직장생활 헛되이 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을 만나서는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겉보기엔 아무런 풍파 없이 살아온 거처럼 보이는 나에게 숨기고 싶었던 지난 20대의 이야기들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나 사실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그저 지난날의 이야기들이자 지금의 내가 있게 된 원동력의 과거로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자 놀랍게도 그들도 그들이 가진 사연을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8년이라는 시간을 가장 친한 동료라고, 동료 이상의 친구라고 여기며 지낸 서로였지만, 비슷한 가정사를 겪고,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들. 결국 우린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고,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내가 런던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물어봐주기도 했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런던에 있다고 믿었는데, 나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마침내 털어버렸더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이곳에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정말 인생 멋지게 사는 거 같다며 진심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에 불안감이 사그라들었다. 런던에 있을 때 한참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리고 유럽식 나이로 살면서 나이를 잊고 살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젠 더 이상 나이가 나의 새로운 도전에 있어서 기준이라든지 가능성이 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사회가 정한 잣대에 내 인생의 속도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나의 속도대로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에 너무 많은 나이라든지 늦은 나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지금이라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냈을 때 언젠가 지금을 떠올리며 그때 시작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할 걸 아니까. 


물론 한 살이라도 어리면 지식 습득력과 적응력도 앞에서 목표에 도달하는 시간이 빨라지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쌓이는 인생 경험과 강한 목표의식 그리고 끈기는 한 살 더 먹어가면서 얻게 되는 선물이기에, 이제는 삼십대라는 단어도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런던을 떠날 날이 점점 다가올 때 입버릇처럼 크리스마스에 꼭 돌아오겠노라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리하여 아껴두었던 방 보증금으로 크리스마스 런던행 비행기표를 살 수 있었고, 런던을 떠난 지 두 달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일주일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플랏 메이트와 집주인 언니와 함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연휴를 보내고, 금빛 불빛들이 반짝이고 크리스마스 캐럴과 새해 인사가 울려 퍼지는 런던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지난날의 추억을 다시 한번 회상하며, 한국에서 잠깐 공허해진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2017년 12월 31일. 전 세계 각 국에서 모인 사람들과 함께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고 빅벤의 종소리와 화려한 불꽃과 함께 2018년을 런던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둘 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색색의 불꽃을 보니 내가 이곳까지 걸어온 길들이, 모든 순간순간들이 빛나는 불꽃과도 너무나도 닮았다.

2017-2018 LONDON NYE FIREWORKS


나는 늘 꿈을 꾸고 목표를 만들기를 좋아했다. 내가 머릿속으로 늘 꿈꾸던 그 목표 지점에 내가 서있는 상상을 하고, 그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펼쳐지는 짜릿함에 중독되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사소한 순간순간에 동기부여를 하고 또다시 앞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아마도 이러한 감정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 여행이었을 것이고, 그 모든 동기부여와 여행의 순간들이 나를 지금의 이곳까지 이끌었을 것이다.


유럽이 너무 좋았고, 항상 동경했었다. 그래서 스물여섯 처음 떠난 유럽 여행에서, 꿈에 그리던 이탈리아와 마주했을 때 나의 인생은 큰 변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여행이 되었고, 그렇게 일 년에 두 번씩 유럽으로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리하여 꿈꿔오던 대로 서른에 유럽 여행의 종착지로 꼽은 북유럽을 다녀왔고, 나의 꿈이 시작된 이탈리아를 다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살고 싶었던 도시 런던에 머무르면서 두 번째 인생의 변화를 맞이했다. 돌이켜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서른, 2017년이었고, 내가 겪은 변화와 성장이 2017년 한 해에 다 일어났다는 것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이 멋진 도시에서 꿈을 이룬 것, 서른을 보내고 또 다른 새해 2018년을 이곳에서 맞이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 많은 시간의 필름이 빛나는 밤하늘에 수놓아졌고,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자를 푹 뒤집어쓰곤 목구멍으로 한꺼번에 올라오는 감정들을 꾹꾹 눌러야만 했다.



한때는 후회와 미련이 남는 과거가 있었고, 거기에 스스로 얽매여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그 과거로 인해 슬픔을 극복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찾아 살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삶에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났으며, 앞으로도 나에게 다가올 행복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기회가 된다면 이 모든 것을 다 할 것이고, 정말 원하는 것은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살 것이다. 


런던에서 찾아온 나의 새로운 목표들은 열심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이전처럼 금방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몇 년은 걸릴 목표들이지만,


언젠가 모든 목표들을 이뤘을 때, 

그것이 내 꿈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다.



2018년 2월의 어느 날. 


한국이 좋아서 자신의 여권에 한국 입국 도장이 제일 먼저 찍히기를 기대하며 한국을 찾은 영국 남자는, 

런던을 좋아하는 동갑내기 부산 여자를 만났다. 아마도 둘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듯했다.


그 해 떠난 파리 여행에서 

그는 수줍게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했다. 


그 해 떠난 런던 여행에서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그녀가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트라팔가 스퀘어에 서게 되었다. 

꼭 사랑하는 사람과 돌아오겠다던 지난날의 약속처럼.


그녀의 런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그녀가 써 내려갈 또 다른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연재를 마치며...>



구독자님들. 10회의 연재 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의 소중한 추억 한 페이지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브런치팀도 감사합니다.

런던에서 써온 일기들을 매일 밤 다시 들춰보고 글을 쓰면서, 참 많이 웃고 울었습니다. 

덕분에 런던에서의 추억 속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매회 댓글로 격려해주신 독자님들, 나의 이야기 같다며 감동했다는 독자님들, 읽는 동안 저처럼 눈물을 흘리셨다는 독자님들, 제가 12월 연재 편엔 영국에서 온 귀한 손님으로 브런치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일일이 답글을 달아드리지 못했지만 이렇게 대신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저의 브런치는 어쩌면 계속해서 이어지는 저의 삶 그 자체인 거 같아요.

2015년 단순하게 여행의 기억들을 정리하고자 시작했던 브런치인데,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기록되어 있네요.


글을 쓰면서 그때그때 생각했던 꿈과 목표를 기록했고, 그 뒤엔 그것을 이뤄낸 이야기들을 기록하기를 

반복하면서 글의 힘이 이렇게 강력한 것이라는 걸 스스로 느낄 때도 있었고요. 


한번 올린 글은 저 스스로도 보기가 민망해서, 아직도 제 글을 다시 보는 게 쑥스러워서 잘 못하지만, 

책을 출판해본 적도 없고, 글쓰기가 업이 아님에도 저의 글과 사진을 좋아해 주시는 독자님들 계시기에

올해도 즐겁게 이곳에 글을 써 내려가 보려 합니다. 


2019년, 독자님들의 영화 같은 삶에도 언제나 멋진 일과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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